물체-물체 인과성 논쟁: 충돌에서 물체들이 진정한 원인인가, 신만이 원인인가.
신이 일차적 원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데, 그렇다면 물체들은 어떤 의미에서 원인인가?
기회원인론 (Occasionalism)
해트필드, 가버
물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원인이 아니다. 물체 A가 물체 B와 충돌할 때, A가 B의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신이 그 충돌을 **기회(occasion)**로 삼아 직접 B의 운동을 일으킨다. 물체들은 말하자면 신이 개입하는 계기를 제공할 뿐, 인과적 힘을 실제로 행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량(vis)이나 경향성 같은 것을 물체에 귀속시키는 것은 엄밀히 말해 거짓이거나 허구다.
보존론 (Conservationism)
게루, 가베이, 슈말츠
신은 매 순간 세계를 새로 창조하는 방식으로 보존한다. 그런데 신이 물체들을 보존할 때 그것들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량이 보존되도록 재창조한다. 이 견해에서 물체들은 기회원인론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인과적 힘을 갖지 않는다. 차이는 신의 역할을 개입이 아니라 보존의 관점에서 기술한다는 점이다. 슈말츠의 경우 이것이 급진적인데, 물체들에 어떤 능동적 역할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원인론 (Concurrentism)
데스 쉔, 델라 로카, 해태브, 페신
신과 물체들이 함께 운동을 일으킨다. 신은 일차적 원인이고 물체들은 이차적 원인이며, 이 둘이 동시에 협동하여 결과를 산출한다. 물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과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동시원인론 안에서도 세부 입장이 갈린다:
데스 쉔의 수정된 동시원인론: 신은 오직 운동의 산출에만 물체들과 협동한다. 정지는 협동 없이 신이 단독으로 보존한다. 이것은 표준적 동시원인론보다 신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수정된 버전이다.
페신의 법칙론적 동시원인론: 물체들이 이차적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 인과적 힘은 물체들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과한 자연 법칙들로부터 온다. 물체들은 연장된 것으로서의 본성과 법칙들의 조합에 의해 특정 방식으로 운동을 전달하는 성향을 갖는다. 이것이 앙프레가 5절에서 비판하는 입장이다 — 이 견해에서 경향성은 법칙의 부산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전체 구도 정리
입장물체의 인과적 역할대표자
| 기회원인론 | 없음. 물체는 기회만 제공 | 해트필드, 가버 |
| 보존론 | 없음. 신의 보존 작용만 있음 | 게루, 가베이, 슈말츠 |
| 동시원인론(수정) | 있음. 단 운동 산출에만 | 데스 쉔 |
| 법칙론적 동시원인론 | 있음. 단 법칙에 의존 | 페신, 해태브 |
| 앙프레의 입장 | 있음. 경향성이라는 독립적 양태로서 | 앙프레 |
앙프레의 논문은 이 논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인과성 논쟁에 선행하는 물음인 경향성의 존재론을 다룬다고 스스로 밝힌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사실상 법칙론적 동시원인론을 비판하고 물체들에 독립적인 인과적 힘을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동시원인론에 가까운 입장이다.]
역량(vis)의 존재론 논쟁: 데카르트가 말하는 역량이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가, 그것이 실재하는가.
각 입장 설명
(1a) 역량은 실재하며 신의 작용과 동일하다 — 해트필드
역량이라는 말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신의 작용이다. 물체들에 역량을 귀속시키는 것은 사실상 신의 인과적 활동을 기술하는 것이다. 역량은 실재하지만 그 실재성은 신에게 있다. 기회원인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b) 역량은 실재하며 물체들의 양태들이다 — 게루, 가베이, 슈말츠
역량은 신의 작용이 아니라 물체들 자체에 내재하는 실재적 양태다. 앙프레가 이 입장에 가깝다고 밝히며, 경향성을 물체의 양태로 보는 그의 주장이 바로 이 노선을 따른다.
(2) 역량은 허구다 — 가버
역량이 인과적으로 능동적이려면 단순한 기하학적·운동학적 양태로 환원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존재론에서 물체들은 오직 연장의 양태들만을 가진다. 따라서 인과적으로 능동적이면서 동시에 연장의 양태들로 측정 가능한 실체는 없다. 역량이라는 말은 편의상 사용하는 허구적 표현일 뿐이다.
(3a) 이중 측면 설명 — 데스 쉔
역량은 물체들의 속성이기도 하고 신의 활동이기도 한 "이중 측면"을 가진다. 역량을 물체에 귀속시키는 것은 그 물체가 신의 활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역량이 완전히 허구도 아니고 완전히 독립적인 실재도 아닌 중간적 입장이다.
(3b) 역량은 원인이 아니다 — 루
물리학이 측정하는 역량들은 실재하지만 인과적 힘이 아니다. 즉 역량은 물체들의 상태를 기술하는 데 유용한 양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니다. 측정 가능성과 인과적 효능을 분리하는 축소주의적 입장이다.
앙프레의 위치
앙프레는 명시적으로 (1b)에 가깝다고 밝힌다. 경향성이 물체의 실재적 양태라는 그의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2)의 가버에 맞서서는 역량이 연장의 양태들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이 역량과 그 양태들이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답한다. (3a), (3b)에 맞서서는 경향성이 실제로 인과적 결과를 산출한다는 점 — 항상 어떤 결과를 낳는다는 특징 ④ — 을 통해 축소주의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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