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앙프레, 「실재하는 경향들」 — 전체 정리
논문의 문제의식
데카르트의 물질 세계 이론은 표면적으로 힘이나 잠재성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질의 본질은 연장(res extensa)이고 모든 설명은 크기·형태·운동으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철학의 원리』에서 운동하는 물체의 "역량"이나 정지한 물체의 "저항"을 실제로 이야기한다. 이 긴장을 데스 쉔은 "역량의 문제"라고 불렀다.
앙프레의 핵심 주장: 데카르트의 물질 세계에는 경향성(tendency)이라는 독립적이고 실재하는 양태가 존재하며, 이것은 스콜라적 숨은 성질도 아니고 자연 법칙의 부산물도 아니다.
1절: 서론
- 데카르트는 스콜라적 힘들을 거부하지만 역량의 언어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 물질 세계에는 경향성이라는 별도의 힘의 양태가 있다.
- 엘리자베트 편지의 구절 — "우리는 영혼의 힘과 물체의 힘을 혼동해 왔다" — 이 출발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두 종류의 인과성의 구별이 아니라, 두 종류의 힘 자체의 구별이다: 정신적 힘 대 경향성.
- 논문의 구성: 스콜라적 힘 비판(2절) → 경향성의 본성(3절) → 수동성과의 양립 가능성(4절) → 법칙 환원론 비판(5절).
2절: 스콜라적 힘들에 대한 데카르트의 비판
스콜라적 힘이란 무엇인가
수아레스를 대표로 하는 스콜라 철학에서 자연 변화는 능동적 힘들의 현실화로 설명된다. 이 힘들은 성질 범주에 속하는 우유(accident)이며 실체로부터 실제로 구별되고 분리 가능하다. 실체의 다양한 힘들은 그 실체형상으로부터 비롯된다.
데카르트의 두 비판
직접적 비판 — "작은 영혼들" 반론: 스콜라적 힘들은 자신의 결과를 향해 내재적으로 경향한다. 예컨대 중력은 지구의 중심을 "향한다". 데카르트는 이 향함이 지향성(intentionality)을 함축하고, 지향성은 인식(cognition)을 요구한다고 본다. 물체가 지구 중심을 향하려면 그것에 대한 표상이 있어야 한다 — 이는 물체에 작은 영혼을 부여하는 셈이다. 이런 인식적 힘 모델은 정신에는 적합하지만 물질에 투사하면 부당하다.
간접적 비판 — 불필요성 논증: 모든 자연 현상은 입자들의 크기·형태·위치·운동이라는 미세구조적 배열만으로 설명 가능하다. 예컨대 자기력의 극성은 자석 공극의 형태와 입자의 비틀림 방향으로 설명된다. 신비로운 인력·척력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이로부터 나오는 구분
- 정신적 힘: 표상과 인식을 포함하는 진정한 지향적 힘. 영혼이 신체에 작용하는 힘이 여기에 속한다.
- 물체적 힘: 중력·자기력 같은 것들은 미세구조적 배열로 환원되는 물질적 성향(habitus) 이다.
그런데 앙프레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레기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능동적 성질들"은 이 물질적 성향과도 다른, 별도의 양태 — 즉 경향성 — 를 가리킨다.
3절: 경향성의 본성
자연 법칙에서의 경향성
자연의 제2법칙: 모든 운동하는 물체는 직선 운동을 향한 경향성을 가진다. 원운동에서도 이 경향성은 존재한다 — 다만 방해받을 뿐이다.
제1·3법칙의 역량들(운동하는 힘, 저항하는 힘)도 모두 경향성으로 이해된다. PP II 43에서 데카르트는 명시적으로 말한다: "이 힘은 단순히 모든 것이 quantum in se est 동일한 상태에 머물기 위해 경향한다는 사실에 있다."
빛: 경향성의 전형적 사례
빛은 경향성의 전형적 사례다. 데카르트는 빛을 제2원소 구체들이 소용돌이 중심 주위를 회전할 때 생기는 원심적 압력으로 정의한다.
[actual motion(실제 운동)이 아닌 이유: 만약 빛이 실제 운동이라면 태양에서 눈까지 입자들이 실제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우주는 가득 찬 공간(plenum)이므로 입자들이 이동하려면 중간의 모든 물질이 연쇄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이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빛이 순간적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경향성이자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작용인 이유: 소용돌이 안의 구체들은 가득 찬 공간 때문에 실제로 원심 방향으로 이동할 수 없다 — 항상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심적 압력·경향성은 실재한다. 이 압력은 꽉 찬 파이프 안의 물처럼 중간의 물질 전체를 통해 순간적으로 전달된다. 파이프 한쪽 끝을 밀면 다른 쪽 끝이 즉각 반응하듯이. 입자들이 실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압력이 전달되는 것이므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경향성의 정의
PP III 56으로부터:
X가 Y를 향해 경향한다 ↔ 외부 원인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면 X는 Y를 향해 운동할 것이다.
경향성의 특징들
① 운동과 구별되지만 운동에 의존한다 경향성은 운동을 향한 경향이지 운동 자체가 아니다. 물체들은 직선으로 경향하지만 실제 운동은 항상 원운동이다(가득 찬 공간이므로). 운동은 시간에 걸쳐 있지만 경향성은 순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경향성은 덧없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 투석기 돌의 원심적 경향성은 속도에 따라 증가하며 지속된다.
② 잠재성이지만 단순한 잠재성이 아니다 페르마에 대한 답변에서 데카르트는 경향성을 운동의 잠재태로 규정한다. 그러나 단순히 "언젠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a) 반사실적 조건문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착 상태(stalemate) 논증: 두 사람이 지팡이를 반대 방향으로 동등하게 밀거나 당기는 두 상황은 물체의 운동/정지 상태가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들에 상응하는 반사실문들은 진리치가 다르다 — 첫 번째 경우 A가 멈추면 B는 앞으로, 두 번째 경우 B는 뒤로 움직인다. 이 차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경향성들 자체에 의해서만 근거 지어진다. 경향성은 이 반사실문들의 **진리 제작자(truthmaker)**다.
(b) 항상 어떤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경향성은 그것이 경향하는 운동을 실현하지 못해도 항상 어떤 현실적 결과를 낳는다. 경향성의 현실화는 두 가지다: 충족되어 목표 운동을 실현하거나, 방해되어 다른 결과(투석기 줄의 늘어남 등)를 낳거나. 빛은 이 두 경우와 달리 경향성 자체가 직접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작용으로 나타나는 사례다.
존재론적 지위
경향성은 스콜라적 실재적 성질처럼 실체와 실제로 구별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것은 물체의 양태여야 한다. 데카르트는 모어 편지에서 명시적으로 말한다: "창조된 실체에서 이 힘은 양태이다." 경향성은 강도가 변하고 획득·상실될 수 있으므로 양태의 조건을 충족한다. 또한 연장의 양태들(크기·형태·표면·운동)로 측정될 수 있다 — 단, 측정 가능하다는 것이 그것들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영혼들" 반론의 무적용
경향성은 지향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경향성의 방향은 물체의 과거 운동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 미래 상태의 표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직선이 단일 순간에 규정되는 가장 단순한 경로이므로, 인식 없이도 경향성의 방향이 결정된다.
4절: 경향성은 물질의 수동성과 모순되지 않는가
문제
경향성이 일종의 능동성이라면, 물질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라는 데카르트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는가?
라 포르쥬의 극단적 결론
물체가 자신을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물체도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진짜 원인은 신뿐이다.
핵심 구별: 개시와 지속
데카르트는 라콩브에 대한 답변에서 분명히 말한다: 물체가 운동을 스스로 개시할 수는 없지만, 일단 운동하게 되면 지속하는 힘을 가진다. 따라서:
- 수동성 = 운동을 스스로 개시할 수 없음
- 이것이 운동을 지속하거나 다른 물체에 전달하는 경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물질의 수동성은 운동에 대한 저항이나 무관심이지, 일단 운동 중인 물체가 아무 힘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데카르트가 케플러적 자연적 관성을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질은 운동에 본질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 정지에 무관심하다.
정지 역량의 이중성
정지한 물체의 역량도 두 측면을 가진다:
- 관성적 정지 역량(수동적): 단순히 정지 상태에 머물려는 경향. 물질의 순수한 수동성의 표현.
- renixus(능동적 반응): 다른 물체가 충돌해 올 때 비로소 나타나는 저항. 세계에 운동이 존재하고 충돌이 일어날 때만 나타난다.
앙프레는 이 구별을 수아레스의 수동적 잠재태 이론에서 빌려온다: 수동적 잠재태는 단순히 작용을 받아들이는 것(형식적 저항)뿐 아니라 반대 작용을 약화시키는 것(근원적 저항)도 포함한다.
모어 반론 해결
모어는 정지 역량이 "긍정적인 어떤 것"이라면 수동성과 모순된다고 반론한다. 데카르트의 답변: 내가 거부하는 것은 정지 역량이 실체와 실제로 구별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다. "긍정적"이라는 말은 활동성이 아니라 실재적 구별을 가리킨다. 정지 역량은 양태적 존재이며, 이것이 저항으로서의 능동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결론
물질의 본질적 수동성(운동 개시 불가)과 파생적 능동성(운동 지속 및 저항)은 모순이 아니다. 경향성은 신이 도입한 운동을 전제하되, 그것과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물체의 양태다.
5절: 경향성은 자연 법칙들로 환원되는가
법칙론적 동시원인론의 주장
페신이 대표하는 이 견해: 경향성은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고, 신의 불변성 → 자연 법칙들 → 경향성의 순서로 위에서 아래로 도출된다. 연장은 기회 원인 역할만 한다.
근거:
- 『철학의 원리』에서 법칙들이 운동의 이차적 원인들로 명시적으로 도입된다.
- 제1·2·3법칙 모두 신의 불변성으로부터 정당화된다.
예비적 논점: 『세계론』의 증언
『세계론』에서 데카르트는 반대 방향을 취한다: 물체들의 경향성들이 이차적 원인들이고, 법칙들은 그로부터 발생하는 균일성의 기술일 뿐이다. 이것은 법칙론적 동시원인론을 텍스트적으로 확정짓기 어렵게 만든다.
반론 1: 법칙은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데카르트는 법칙들을 "도덕적 존재들"(entia moralia)로 규정한다. 추상적 규칙이 인과적 힘을 가질 수 없다. 법칙의 효능이 결국 신의 의지의 효능이라면, 이차적 원인은 없고 신만이 유일한 원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론 2: 법칙은 경향성 진술이지 조건문이 아니다
데카르트의 법칙들은 "필연적으로 만약 X라면 Y이다" 형식의 조건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물체들이 quantum in se est 하는 것, 즉 경향성들에 관한 진술들이다. 그런데 이 경향성들은 조건적 진리들로 환원될 수 없다.
반론 3: 전체적 보존에서 국지적 보존이 도출되지 않는다
제3법칙을 예로 들면: 신의 불변성은 우주 전체의 운동량 보존만을 보장한다. 그러나 실제 충돌에서는 국지적으로도 운동량이 보존된다. 이 국지적 보존은 전체적 보존 원리만으로는 도출되지 않는다 — 이론적으로 신이 나머지 우주를 조정해서 전체 보존을 맞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지적 충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려면 개별 물체들의 경향성들 — 운동 역량과 저항 역량의 상호 제약 — 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경향성들이 법칙보다 더 근본적임을 보여준다.
결론
경향성들은 자연 법칙들의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법칙들이 기술하는 균일성의 근거다. 경향성 → 법칙의 방향이지, 법칙 → 경향성이 아니다.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내부적 변화의 원천으로 파악된 능동적 원리를 위한 자리를 갖지는 않지만, ‘능동적 성질들’의 자리가 물질적 세계에서 완전히 부재한 것은 아니다. 연장실체의 세계는 이 ‘능동적 성질들’이 원래 신으로부터 오는 기존의 운동 위에 수반되도록 한다.
논문 전체의 구조와 결론
앙프레의 논증은 세 층위의 구별 위에 세워진다:
| 유형 | 사례 | 지위 |
| 정신적 힘 | 영혼이 신체에 작용하는 힘 | 표상과 인식을 포함하는 지향적 힘 |
| 실재적 경향성 | 관성적 역량, 빛·중력·자기력이 작동하는 차원 | 운동을 전제하는 물체의 실재적 힘의 양태 |
| 미세구조적 배열 | 입자들의 크기·형태·배치 | 순수하게 기하학적·범주적 사실. 힘의 차원이 아님 |
경향성은 이 세 층위의 중간에 위치한다. 미세구조적 배열은 왜 이런 방향으로 경향성이 생기는지를 설명하는 토대이고, 경향성은 그 토대 위에서 운동과 함께 나타나는 별도의 힘의 양태다.
빛·중력·자기력은 이 두 층위가 함께 작동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특히 빛의 경우, 제2원소 구체들의 원심적 경향성이 가득 찬 공간 때문에 실제 운동으로 실현될 수 없지만 그 압력 자체가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작용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빛이 actual motion이 아니라 tendency이자 instantaneously transmitted action인 이유다.
스콜라적 힘들과의 결정적 차이: 경향성은 지향성을 요구하지 않고, 실체와 실제로 구별되지 않으며, 미래 상태의 표상 없이 과거 운동만으로 방향이 결정된다. 법칙들과의 결정적 차이: 경향성은 법칙들이 기술하는 균일성의 근거이지 그것의 부산물이 아니다.
데카르트의 물질 세계는 "위협과 약속들로 가득 찬" 세계다 — 단지 그 위협과 약속들이 스콜라적 형상이나 성질로부터가 아니라, 신이 최초로 도입한 운동 위에 수반하는 경향성들로부터 온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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