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박동에 관한 데카르트: 뢰번 사건
Lucian Petrescu 헨트 대학교
이 논문은 뢰번 대학 교수 Fortunatus Plempius와 Libertus Fromondus가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에 표명한 반응들을 제시하는데, 이 반응들에는 위트레흐트 대학 교수 Henricus Regius도 관여했다. 필자는 1637-1638년 데카르트와 두 뢰번 교수 사이에 교환된 편지들이 지속적인 논쟁을 촉발했으며, 이 논쟁이 일련의 출판물을 통해 이어져 1662-1663년의 데카르트주의 단죄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인다. 또한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에 대한 수용이 뢰번에서 데카르트주의의 초기 거부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그리고 이 교환 전반에 걸쳐 생리학적 논거들이 어떻게 신학적 관심에 의해 동기화되었는지를 탐구한다.
1. 서론
17세기에 가장 높이 평가된 발견 중 하나의 전파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우회로가 있다. 혈액 순환에 관한 하비의 설명의 수용은, 특히 저지대 국가들에서, 심장 박동 기원에 관한 데카르트의 설명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데카르트는 혈액 순환을 지지하고 이에 대한 공을 하비에게 돌린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는데, 아마도 자신의 해부학적 실험을 통해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를 행하면서 심장의 근육적 성질과 심장 운동에 대한 하비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기계론적 해결책을 내세웠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생리학은 전반적으로 잘 수용되었지만, 특히 북부 네덜란드에서, 이 수용은 결코 일선형이 아니었다. 더 신학적으로 경향 있는 의사들 사이에서 논쟁도 불러일으켰다.[1]필자는 여기서 뢰번을 중심으로 한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에 관한 지속적인 논쟁을 제시하는데, 이 논쟁이1662-1663년의 유명한 일련의 데카르트주의 단죄로 이어진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단죄들로 이어진 사건들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동기를 지녔지만,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이 불러일으킨 논쟁을 재검토함으로써 그의 생리학이 남부 네덜란드에서 데카르트주의의 초기 수용(및 거부)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더 밝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비의 의학적 발견의 전파와 그것의 데카르트와의 연관은 여러 저작들에서 탐구되어 왔다. 수용사 연구들은 영국 해협 이쪽저쪽에서 이 생리학적 관념들이 얼마나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었는지를 알려준다. 하비의 설명에 비해 데카르트의 심장 기제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이것이 수반하는 복잡성과 함께, 기계론 대 활력론의 성공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2] 더 최근에 Marjorie Grene은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이 하비의 것과 비교할 때 "보수적 혁신"에 해당한다고 제안했다. 즉 "그의 입장이 더 수용 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것은 또한 의학적 세부 사항에서 그것이 더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3] 이것은 이야기의 한 측면이다. 데카르트의 생리학적 정보와 과학적 결과들은 더 전통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배후의 철학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으며, 아마도 이것이 독자들에게는 더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데카르트가 심장 연구에서 여러 "보수적" 사실들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며, 가장 두드러지게는 심장과 동맥에서 수축기와 확장기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갈레노스의 명제가 그렇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설명과 데카르트의 설명 핵심인 "빛 없는 불"의 개념화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새롭고 전례 없으며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견해](nova est ac inaudita, et prorsus absurda [opinio])"라고 충격받은 독자가 외쳤다.[4]
뢰번 사건에 대한 필자의 재검토는 데카르트의 심장 운동 설명의 수용을 결정한 철학적 문제들에 집중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이, 그 의학적 세부 사항의 철학적·신학적 함의들을 고려할 때, 대학에서 확립된 의학 전통에 상당 부분 반하는 것이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또한 이 전통이 주로 신학적 근거에서 강하게 반발했으며, 같은 의학계가 데카르트에 맞서 더 보수적인 것으로서 하비의 생리학을 선호했다는 것을 지지한다. 혈액 순환 자체는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적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다.[5] 데카르트의 심장 운동 설명은 그렇지 않다. 뢰번의 수용은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이 단순한 의학적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데카르트가 나중에 『성찰』이나 『정념론』 같은 후기 저작들에서 이 명제들을 발전시키기 전에도, 영혼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특정 데카르트적 명제들에 대한 헌신을 수반하는 것으로 읽히고 논의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필자는 하비와 데카르트에서 해당 생리학적 문제를 간략히 상기한 후, 1637-1644년 데카르트 심장 생리학에 대한 첫 번째 반응들을 탐구한다. 그렇게 하면서 필자는 데카르트, 플렘피우스, 레기우스 사이의 심장 박동에 관한 논쟁을 따라가며, 이를 영혼의 본질에 관한 헌신에 의해 동기화된 것으로 분석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프로몽두스에게서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이 불러일으킨 신학적 반응들을 살펴보고, 1662-1663년 단죄까지 이어진 플렘피우스의 반데카르트 운동의 전개를 추적한다. Monchamp의 『벨기에 데카르트주의의 역사(Histoire du cartésianisme en Belgique)』는 단죄로 이어진 사건들에 관한 독보적인 자료로 남아 있는데, 이 사건들은 그 이후로 광범위하게 탐구되지 않았다(Monchamp 1886). Armogathe와Carraud는 이전에 미출판된 텍스트들과 함께 관련 텍스트들을 제시함으로써 1662-1663년 뢰번의 데카르트주의 단죄를 기록한다(Armogathe and Carraud, 2001). Ariew는 뢰번 단죄에서 우주의 연장에 관련된 여러 논거들을 제시했다(Ariew 1994 and 2011, pp. 241–267). 1662-1663년의 텍스트들은 무엇보다 데카르트의 생리학을 단죄한다. 이 역사적 세부 사항의 동기와 맥락이 여기서 탐구될 것이다.
2. 심장 박동에 관한 데카르트
데카르트가 하비의 『심장의 운동에 관하여(De Motu)』를 읽었다는 증거는 1632년 말의 서신에 나타난다.[6] 하비에게 심장은 빈 수축하는 근육으로, 박동으로 혈액을 운동시켜 들어오고 나가게 밀어낸다.[7] 데카르트가 하비의 설명에 대해 표명한 불만은 그것이 심장 박동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박동을 설명하기 위해 "박동력"(pulsific faculty)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8]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설명의 토대는 근육의 박동력에서 심장 내 내재적 열로 이동한다.[9] 순환 자체의 문제에서는 공개적으로 하비를 칭찬하면서도, 데카르트는 『인간론』(1632년 저술)에서 『방법서설』을 거쳐 서신들과 『인체의 기술(Description of the Human Body)』(1647) 및 『정념론』(1649)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력 전반에 걸쳐 심장 박동에 관한 자신의 설명을 유지했다.[10] 데카르트의 설명이 1630-40년대에 기반을 얻어가고 있던 입자론 물리학을 더 잘 수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관점에서 하비의 설명은, 한 물체의 모든 국소 운동이 다른 물체의 국소 운동의 전달로 설명되는 데카르트의 물리학을 고려할 때, 하비가 행하는 것처럼 근육의 개별 운동을 어떻게"개념화"할 것인가라는 개념 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더욱이 데카르트의 열생성 설명은 생명 열을 혈액 자체가 아닌 심장 내에 위치시키는 확립된 의학 지식과도 부합했다(이 점의 세부 사항은 Grene 2005 참조). 그것은 데카르트에게 완벽한 수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물리학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현상을 의학 전통과 조화시키는 것.
데카르트가 자신의 심장 박동 설명에 부여하는 중요성과 확실성의 정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데카르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심장 운동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생리학적 노력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거듭 말한다. "심장 운동의 참된 원인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여,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의학 이론에 관련된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동물의 다른 모든 기능들이 이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인체의 기술』에서 말한다(AT XI 245 / CSM I 319). 1637년의 『방법서설』에서: "우리가 동물에서 관찰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광범위한 운동으로서, 그것[심장과 혈액의 운동]은 우리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게 해줄 것이다." (AT VI 46–47 / CSM I 134) 혈액 입자들의 순환 운동을 낳는 심장의 운동은 모든 신체 운동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이다. 또한 『정념론』에서 "우리 심장의 지속적인 열"은 신체의 모든 운동들의 "신체적 원리"라고 한다(AT XI 333).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설명을 "보편 학문 계획" 전체의 핵심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내가 이 주제[심장 주기]나 굴절에 관해 쓴 것이 거짓으로 판명된다면, 나의 나머지 철학 전체는 완전히 가치가 없다는 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는 1639년 메르센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AT II 501 / CSM III 134).[11] 이 구절들에서의 데카르트의 언명은 심장 운동의 설명이 데카르트 체계 안에서 논의되고 수용되거나 반박될 수 있는 하나의 특정 생리학적 설명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것은 인간 신체의 지식에 적용된 자연 철학적 기획의 핵심 요소이며, 차례로 그 자연 철학적 기획을 검증한다. 이 설명이 데카르트 기획의 다른 근본적인 원리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의 첫 번째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간략하게 영향력 있었던 의사 Fortunatus Plempius로부터 나온 그의 심장 박동 설명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넘어간다. 플렘피우스와의 논쟁은 당시 데카르트의 제자였던 Henricus Regius를 통해, 그리고 병행하여Libertus Fromondus와의 간략한 교환을 통해 이어진다. 각각 심장의 생리학을 논의하는 플렘피우스와 데카르트의 주요 편지는 두 통씩 있으며, 모두 1637-1638년의 지속적인 서신 교환의 일부다.[12]
3. Fortunatus Plempius (1601–1671)와 Henricus Regius (1598–1679)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플렘피우스는 1630년대 초 암스테르담에서 의업을 행하던 중 데카르트를 만났으며, 그가 뢰번의 의학 교수가 된 1630년대 후반까지 데카르트와 연락을 유지했다. 그의 생생한 묘사에서 플렘피우스는 그들의 만남을 히포크라테스가 데모크리토스를 만나는 것에 비유했다.[13] 당시 플렘피우스는 이미 교양 있고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의사였다. 암스테르담 출신이지만 가톨릭 학교와 대학교(헨트, 뢰번, 파도바, 볼로냐)에서 교육받은 그는 1633년 뢰번 의학부 교수직을 맡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14] 그는 뢰번 의학 과정 1학년을 다루는 첫 번째 의학 교재를 『의학의 기초(De Fundamentis Medicinae libri sex)』라는 제목으로 1638년(뢰번: Zegers)에 출판했다. 『기초』는 한 역사가의 말로17세기 의학에서 "가장 명확하고 완전한 저작 중 하나"다(Tricot 2000, p. 14). 플렘피우스의 책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 나온 다음 해인 1638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그해 초 데카르트와의 서신 교환을 시작했을 때 아마도 이미 책을 완성한 상태였겠지만, 그 교환의 일부를 출판된 책에 추가했다. 서신 교환이 시작될 때 데카르트가 플렘피우스의 책 준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 전에 수년간 플렘피우스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분명히 순환 이론에 대한 플렘피우스의 반대를 알고 있었는데, 그에게 여러 차례 이의를 보내달라고 촉구했기 때문이다.[15]
1638년 1월 데카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플렘피우스는 혈액 순환에 대한 실험적 이의 세 가지와 데카르트의 심장 운동 설명에 대한 이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 두 번째 편지인 1638년 3월 편지는 순환에 관한 논의를 내려놓으면서 심장 운동에 관한 논의를 이어간다.
혈액 순환에 반대하여 플렘피우스는 이렇게 이의를 제기한다. 동맥혈과 정맥혈이 같아야 할 것이라는 것, 정맥의 국소 물질(materia febrilis)로 인해 유발되는 간헐열이 혈액을 따라 이동하여 하루에 정해진 횟수가 아닌 여러 차례의 발열 발작을 일으켜야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동물의 다리 정맥을 묶어두면서 동맥은 열어두면 혈액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인해 다리가 현저히 부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16]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데카르트의 답변은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그는 하비에게는 동맥혈과 정맥혈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심장 자체에서의 혈액 변환을 설명하는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심장에서의 혈액 희박화가 동맥혈을 더 밝고 가늘게 만든다.[17] 두 번째 요점에 대해 데카르트는 페르넬과 그의 간헐열 이론에 호소하는데, 이는 제시하기 좋은 권위이며, 그 이의를 부수적 문제로 일축한다. 결찰 실험은, 그가 지적하듯, 정확히 순환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열어둔 동맥 중 하나를 자르면 혈액이 더 강하게 흘러나올 것이기 때문이다(AT I 531–534).[18]
순환에 관한 데카르트의 답변은 플렘피우스에게 잘 수용되었다. "혈액 순환을 지지하기 위해 당신이 제시한 다른 것들은 충분히 훌륭하며(satis bene se habent), 그 견해[순환에 대한]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지 않습니다."[19] 혈액 순환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둘러싼 교환은 데카르트의 조건으로 끝나는 것 같았고, 플렘피우스는 나중에 실제로 하비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서신에서 제기된 다른 문제는 같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심장 운동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의 논거에 더 완강했다. 데카르트에게 두 가지 문제 — 혈액 순환과 심장 운동 — 는 분리될 수 없었다. 플렘피우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두 편지(1638년 1월과 3월)에서의 심장 운동에 관한 논의는 상당히 길다. 필자는 간략한 요약만 제공할 것이다.플렘피우스의 논평은 일반적인 언급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그의 후속 논점들을 예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에서의 어떤 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갈레노스는 이 견해에 반하여 어떤 능력에 의해 심장이 운동한다고 가르쳤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의사들이 모두 가르쳐 온 것이다"라고 플렘피우스는 말한다.[20] 그는 데카르트의 기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최소화할 뿐 아니라, 갈레노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도 거짓이라고 일축한다. 1월에 플렘피우스는 심장뿐 아니라 동맥 벽에서도 운동이 특정 능력에 의해 생성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한 갈레노스적 공격을 전개한다. 그는 동맥들이 동맥 벽을 통해 흐르는 무언가의 덕분에 박동하는 것이지 그것들을 통해 혈액이 흐르는 덕분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유명한 갈레노스적 결찰 실험을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이 실험이 "내 역학의 법칙들"에 따르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한다.[21] 다음으로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의 "역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데카르트가 혈액의 희박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발효 과정은 자연에서 심장 박동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느린 과정이다. 희박화는 점진적이다. 데카르트는 이 요점에 대해 길게 답하며, 어느 정도의 열에 이르면 냄비에서 매우 빠르게 튀어나오는 특정 액체들과의 유비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혈액의 희박화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다시 플렘피우스는 역학에서 또 다른 이의를 제기한다. 심장에서 동맥으로의 운동 전달이 신체 전반에 즉시 전달되어 혈관의 동시적 맥박을 설명하지 못하고, 인접한 동맥에만 전달될 것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에 대해 자신의 반갈레노스 실험을 다시 언급한다. 심장 인근 동맥들을 통해 밀려나가는 혈액이 차례로 나머지 혈액을 밀어낼 것이고,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체를 통한 운동의 전달은 손실 없이 이루어진다.
이 논거들의 세부 사항은 데카르트 설명의 실험적 전개에 중요하며, 그가 행한 가장 훌륭한 전개 중 하나로, 문헌에 의해 적절히 활용되어 왔다.[22] 그러나 필자는 즉각적인 희박화를 상세히 설명하는 한 지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플렘피우스에 따르면, 살아있는 신체에서 막 적출된 심장은 계속 박동한다. 혈액이 더 이상 발효를 유지하기 위해 거기 없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데카르트는 이것에 대해 여러 실험적 답변을 주었다. 항상 약간의 혈액이 남아 있다는 것, 물고기 관찰에서 자신이 보았듯, 즉각적인 희박화 이론을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적출된 심장에 남아 발효를 유지하는 효모 이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데카르트가 플렘피우스 자신의 관찰을 그에게 불리하게, 감각적 영혼의 운동력에 반하는 논거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영혼은 사실 죽은 심장에 남아 작용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이 이의는, 그가 말하기를, 나에게는 심장의 운동이 영혼의 어떤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는, 다른 이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견해에 훨씬 더 피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나는 묻건대, 잘려나간 심장 조각들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어떻게 인간 영혼에 의존할 수 있는가. 이성적 영혼은 불가분하며 거기에 결부된 감각적 또는 식물적 영혼이 없다는 것이 신앙의 조항으로 받아들여지는데?(AT I 523 / CSMK 80–81).
이 지점은 논거를 과학적(실험적) 증거에서 더 광범위한 관심사로 이동시킨다. 이 이의는 플렘피우스로 하여금 두 번째 편지에서, 영혼이 떠나더라도 그 "힘", 영혼의 어떤 능력 또는 "도구"가 남는다고 답하도록 강제한다.
나는 그럼에도 일반적인 견해[영혼의 능력들에 관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신체에서 적출된 인간 심장에는 영혼이 더 이상 없고, 따라서 능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영혼의 도구, 즉 영혼의 힘으로 작용하는 정기가 얼마간 내재한다. 이렇게 나는 막 참수된 사람의 시신에서 살아있는 사람에서와 똑같이 열과 생명을 부여하는 정기가 그 안에 있는 한 음식물의 인력, 소화, 동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23]
영혼의 운동 기능이나 도구와 영혼 자체 사이의 분리는 정확히 데카르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존재론적으로 이것은 실체는 없어지고 실체의 성질이나 힘이 남는다는 것을 수반한다. 데카르트의 답변은, 그때까지 예의 바른 교환에서는 특유한 어조의 변화로, 가차 없다.
영혼이 더 이상 없을 때 시신에서 잘라낸 인간 심장이 어떻게 운동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당신은 열과 생명 정기가 영혼의 도구로서 작용하여 운동을 일으킨다는 생각에 의존한다. 이것이 궁여지책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이 도구들이 때로는 혼자서도 이 효과를 낳기에 충분하다면, 왜 항상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왜 영혼이 없을 때 이 효과들이 영혼의 어떤 힘에 의해 일어난다고 상상하는가. 당신은 영혼이 있을 때 이것들을 일으키는 데 그러한 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AT II 65 / CSMK 94).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공개적 공격이라는 드문 순간에, 데카르트는 플렘피우스의 이의들을 잘 방비되지 않은 요새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은 군대 지휘관들에, 항복하기보다는 모든 무기를 다 쏘아버리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에 비유했다.[24]
비록 플렘피우스가 지금은 분실된 또 다른 답변을 보내기는 했지만, 교환은 여기서 끝났다. 언급했듯, 플렘피우스는 같은 해(1638년)에 출판된 자신의 『의학의 기초』에 데카르트 편지들의 논거들을 인용하고 보고했다. 데카르트도 교환을 출판하는 생각을 품었지만, 그 사이에 이 편지들은 널리 유통되었다. 『정념론』과 『인간론』의 출판 이전 데카르트의 생리학은, 『방법서설』과 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들을 통해, 학식 있는 세계에 알려졌다.[25]
1644년 플렘피우스의 『의학의 기초』 2판은 하비의 순환에 대한 플렘피우스의 개종을 표시했다. 자신의 어려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시한 후, 그는 처음에 이 새로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비의 "칭찬할 만한 논거들"을 반박하려 노력했지만, 자신이 오히려 자신을 반박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체 해부 실험들을 통해 이를 검증하여, 결국 혈액 순환을 인정하도록 강제받았다고 기술했다.[26] 이것은 의학계에 울림이 있는 개종이었다.[27] 플렘피우스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데카르트의 편지들 전체를 여기서 출판했다.
비록 플렘피우스가 자신을 설득한 것으로 오직 하비만을 언급하지만, 이 시기 데카르트와의 열띤 논의의 맥락이 결심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28] 이것이 대부분의 논평자들로 하여금 플렘피우스에게 순환 이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한 것이 데카르트와의 교환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29] 이 평가의 근거는 내 견해로는 결정적이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첫째, 1638년 3월 발언에서 플렘피우스의 표현 "neque ea sententia valde displicet(그 견해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지 않습니다)"는 그때 혈액 순환에 대한 그의 반대가 처음부터 그다지 강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플렘피우스는 스콜라 학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의 초대에 망설이면서 순환에 반하여 제기하는 이의들은 스콜라적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거기서 이의를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그 이의들에 대한 동의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교환을 출판하자고 제안할 때 그가 철회함으로써 확인된다. 플렘피우스는 출판에 동의하지만, 순환에 관한 자신의 이의들은 빼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하기를 꺼리는 데카르트는, 그 이의들이 플렘피우스가 진실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데카르트의 요청에 답하기 위해서만 "아니마이 그라티아(animi gratia)"로 제기된 것이라는 언급을 삽입하자고 제안한다.[30] 출판된 교재를 평가할 때도 같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1644년의 공개 고백에서 데카르트의 편지들 전체를 출판하면서도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의 논거들에서 비롯된 견해 변화를 근거로 두지 않는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데카르트가 자신을 설득했다고 결코 언급하지 않는데, 분명히 그럴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시대인들도 그를 순환의 문제에서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읽지 않는다. Jean Riolan은 데카르트의 것 바로 다음에 플렘피우스의 순환 설명을 제시하면서 데카르트를 언급하지 않고 플렘피우스의 실험들을 인용한다. 1644년 플렘피우스의 『기초』의 순환 관련 부분에는 데카르트의 흔적이 없다(pp. 115–118). 그는 1) 하비; 2) 1640년 하비를 확인하는 실험 결과를 출판한Johannes Walaeus; 3) 하비를 반박하려는 자신의 스콜라적 시도들; 4) 자신의 생체 해부를 인용한다. 데카르트와의 교환은3)에 기여한다. 그것은 더 복잡한 과정의 요인들 중 하나다. 데카르트와의 순환에 관한 교환과 1644년 『기초』에서의 공개 개종 사이에 플렘피우스는 그럼에도 1638년에 『기초』 초판을 출판했는데, 거기서 여전히 하비를 의심했다. 물론1644년에는 순환과 하비의 기여가 1638년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었고, 아마도 새로 부임한 교수로서 플렘피우스는1638년에 그 교리를 승인할 수 없었지만 1644년에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1638년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에게 "이 견해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지는 않는다", 그 이의들을 오직 "아니마이 그라티아"로만 제기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책에서는 그 견해에 반하는 논거를 제시했다. 1638년에서 1644년 사이 그와 데카르트 사이의 다른 교환은 없어서, 데카르트 편에서 순환을 위한 다른 논거들이 제시되지 않았다. 더욱이, 플렘피우스가 1638년에 데카르트의 편지들을 출판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정확히 순환을 위한 논거들을 빼내기로 선택했다. 플렘피우스가 1644년에 1638년의 데카르트 논거들 — 1638년 『기초』에서는 빼기로 한 — 을 묵상하면서 견해를 바꿨다면, 이것의 흔적이 그의 저술에는 없다. 혈액 순환에 대한 데카르트의 논거들은 다른 요인들과 함께 플렘피우스의 개종에 기여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31]
개종의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플렘피우스가 그것을 제시한 방식이며, 그는 모든 공을 하비에게 돌렸다. 플렘피우스는 1638년 데카르트의 편지들을 잘라서 출판하기로 선택했다. 그는 심장 운동의 기원에 관한 논거들만 남기고 순환 자체에 관한 논거들은 완전히 제외했다. 1638년 데카르트와의 이 교환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순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장의 운동이었다. 『의학의 기초』 2판(1644)은 갈레노스의 "박동력"을 옹호하며 데카르트의 심장 운동 설명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을 전개한다. 두 번째 책의 다섯 번째 장은 "생명력"에 헌정되어 있으며 부제는 이렇다. "심장의 운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에 반하여, 심장의 발효가 아닌 박동력에 의해 일어난다."[32] 편지들의 논거들을 보고하는 것 외에 플렘피우스는 이 2판에서 데카르트에 반하는 자신의 입장을 중요한 방식으로 명확히 했다. 그의 새로운 논거는 다음과 같다. 심장에는 두 가지 별개의 반대 운동이 있다. 수축 운동과 확장 운동. 이것은 박동력의 이중화를 요구할 것이다. 수축력과 확장력. 하지만 그는 확장력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심장의 확장은 하비의 증명된 순환에 따라 혈액의 유입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축력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혈액의 데카르트적 "기화"를 거부하면서 플렘피우스는 여전히 수축기를 위해 근육에서와 같은 박동력을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p. 160).[33] 따라서 심장의 운동은 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심장 근육을 박동력이 유지한다.
플렘피우스는 하비와 데카르트 양쪽을 모두 갈레노스적 "박동력"의 적수로 정확히 식별했지만(p. 150), 하비가 아닌 데카르트에 대해 길게 논거를 제시하기로 선택했으며, 그의 논거는 하비의 수축기 분석에 크게 의존했다. 하비는 심장이 심실을 확장시키기보다 수축시킴으로써 작동한다는 것과 혈액 분출의 힘이 순환의 주요 구동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표면상 플렘피우스의 논거는 하비의 것만큼이나 갈레노스 학파의 리듬적 박동력에 불리하다. 박동력에 의한 리듬적 확장과 수축은 없지만, 수축은 있다. 그가 하비에 추가하는 것은 수축을 위한 적절한 원인인데, 데카르트 자신도 하비를 읽으면서"박동력"으로 식별했던 것이다. 플렘피우스에게 하비는 중간 길이다. 데카르트가 하비의 강력한 수축기에서 박동력을 읽어낸 것처럼,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에 맞서기 위한 방법으로 같은 독해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1644년에 하비로의 개종은 심장 박동 문제에서 데카르트에 반하는 그의 입장을 강화하는데, 이것은 그가 하비의 순환 이론을 선택한 또 다른 동기로 볼 수 있다.
1644년 『기초』 출판의 두 번째 역사적 세부 사항은 교환의 후속 전개에 대해 시사적이다. 플렘피우스가 여기서 데카르트의 편지들을 출판한 정확한 도구적 이유는 당시 데카르트의 제자 중 하나인 Henricus Regius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편지들의 두 번째 출판은 데카르트와의 교환에서 비롯된 개종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레기우스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만 교환을 다시 출판했다.
데카르트는 1638년 8월 플렘피우스로부터 교환 출판 계획에 관한 답변 없이 남겨졌고, 편지들의 발췌가 1638년 『기초』에 출판된 것을 1640년 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 데카르트의 가까운 제자이자 북부 네덜란드에서 데카르트주의의 초기 촉진자였던 Henricus Regius가 이 사실을 그에게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이제 분실되었지만, Baillet에 따르면 레기우스는 그 문제를 재현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보고했다.[34] 더 나아가 레기우스는 위트레흐트에서 혈액 순환에 관한 변론을 실시하여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을 옹호했다. 변론을 지속하기 전에 레기우스는 자신의 논제들을 승인을 받기 위해 데카르트에게 보냈고, 데카르트는 각각에 대해 논평했다(AT III 726 참조). 변론은 레기우스의 학생 Johannes Hayman을 통해 1640년 6월 10일에 거행되었다. 인쇄된 논제들의 텍스트에서 레기우스는 1638년 플렘피우스의 데카르트 편지 출판이 부정직함을 혹독한 언어로 보고했다.[35]
레기우스의 변론은 『방법서설』에서와 거의 정확히 같이 데카르트의 심장 운동 설명을 제시했다(논제 III, AT III 728–729).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호흡론(De Respiratione)』 20장에서 심장의 맥박을 비등으로 보는 구절을 인용하여 데카르트의 설명을 지지했다(AT III 730). 이것은 플렘피우스가 순환에 관한 데카르트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인용한 같은 구절이다(AT I 497). 교묘한 재전용으로 레기우스는 이렇게 데카르트의 승인 아래 플렘피우스의 구절을 데카르트의 심장 박동 설명을 지지하기 위한 논거로 전용했다. 다음으로 논제 VII에서 레기우스는 데카르트 편지의 플렘피우스 출판을 비난하는 단락을 주장했다. "그는 이의들과 반례들에 대한 답변들을 부분적으로 절단하고 왜곡했으며, 일부는 생략했다. 이 출판 2년 전에 쓴 편지들과 그의 설명을 비교할 수 있는 자는 누구나 알 수 있다."[36] 데카르트는 레기우스에게 라틴어Cartesius 대신 자신의 진짜 이름 "Descartes"를 쓰고, 형용사들을 완화하며 절단의 사례들을 제시하라고 지시했다(AT III 68). 레기우스는 이 권고를 부분적으로만 따랐다.
이 변론은 1644년 『기초』에서 데카르트의 편지들을 이번에는 완전하게 다시 출판할 때 플렘피우스에 의해 인용된다. 여기서 그의 몸짓은 1640년 변론에서의 데카르트-레기우스 공격에 대한 답변이다.[37] 이렇게 레기우스를 통해 데카르트와의 논쟁이 1644년에 계속되었고,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 편에서의 이 새로운 공격에 답했다. 레기우스의 개입과 플렘피우스의 1644년 판은 논쟁이 혈액 순환 문제에서 더 신학적으로 함의가 있는 심장 박동 원인 문제로 이행했음을 명시한다. 1638년에 혈액 순환 이론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한 것이 1644년에는 영혼의 능력들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이 되었다. 『기초』(1644)는 1638년 편지들에서 플렘피우스가 표명한 영혼의 기능들에 관한 입장들을 계속 옹호하고 이를 확장했다. 편지들에서 플렘피우스는 생명 책임을 지는 영혼의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생각을 제시했다("생명 부여 정기"). 막 적출된 심장들에서, 또는 막 참수된 신체들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영혼의 지속하는"정기"의 힘으로 계속 기능하고 심지어 음식물을 소화한다. 1644년 『기초』는 같은 "생명력(facultas vitalis)"을 영혼의 능력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이제 이중적이다. 생명 정기를 생산하는 생명 부여력(vivificatrix)과 수축기를 유발하여 심장의 운동을 유지하는 박동력(pulsifica)이 그것이다(『기초』 1644, p. 150). 동시에 그는 동맥 운동에 대한 하비의 기계론적 설명(p. 160)과 그의 이완기 설명에 대해서는 기꺼이 동의했다. 그가 저항하는 것은 기계론 자체가 아니라 정확히 운동의 원천으로서 "박동력"의 거부다. 1638년 데카르트에게 말했듯,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냄새로 가득 찬 암포라를 지니고 있다.[38] 1644년 출판은 반데카르트 논문처럼 보인다.
논쟁에서 데카르트가 레기우스를 활용한 것은 심장 박동 설명의 수용사에서 더 많은 고려를 요하는데, 레기우스는 이 공격에서처럼 항상 순순히 행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북부 네덜란드에서 방사된 플렘피우스에 대한 반응들과 지속적인 출판물들을 통해, 그는 정확히 의학계에 대한 그의 점증하는 이단성 때문에 뢰번 사건의 촉발제로 볼 수 있다. 1640년대에 데카르트 생리학의 급진화된 판본을 제안하고 데카르트가 결코 쓰지 않은 데카르트주의 개요(『자연철학의 기초(Fundamenta physices)』, 1646, 1653년과 1661년에 확대판)를 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레기우스는 데카르트에서 벗어나 결국 심장 운동에 관한 대안적 설명으로 그에게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Baillet이 보고한 1640년의 분실된 편지에서 레기우스는 심장 박동 원인에 대한 데카르트 설명에 관한 플렘피우스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데카르트 씨가 합쳐져서 심장 박동을 낳는 여러 원인들을 보고하는 곳에서, 플렘피우스는 그중 하나, 즉 열만을 취한다."[39] 이 구절은 Baillet의 편지 보고의 충실함을 증명하는데, 실제로 레기우스는 출판물들에서 심장 박동의 여러 "이차적 원인들"을 계속 보고할 것이다.[40]
1641년 4월 위트레흐트에서 혈액 순환에 관해 지속한 두 번째 변론에서 레기우스는 혈액 운동의 원인으로 데카르트의 가열 설명(coctio)을 한 가지 비틀기와 함께 제시했다. 심장에서 "박동성 비등"의 과정을 통해 "혈액화(sanguification)"가 일어난다.[41] 데카르트적 관념이 아닌 "박동성 비등"은 플렘피우스의 "박동력"을 화학적 비등으로 대체하기 위한 조잡한 용어에 불과하다. 데카르트는 레기우스의 표현에 논평하며 "일반적 익힘(coctio)"에 대해 말하지만(AT III 67), 이 표현을 『정념론』이나 『기술』의 출판된 설명들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레기우스를 따르는 하나의 "혈액화"는 우심실에서 비등을 통해 일어나고, 또 다른 것은 좌심실에서 일어난다. 심장과 동맥의 운동 원인은 본질적으로(causa continens) 새로운 혈액이 유입되기 전에 심장에 이미 존재하는 혈액의 비등에 있지만, 그럼에도 네 가지 병행·보조 원인들의 복합체에 의존한다. 1) 혈액의 "적성"과 구성; 2) 심장의 열; 3) 발효소로 작용하기 위해 박동 후 심장에 남아 있는 혈액의 일부; 4) 심장 혈관들의 성질이 그것이며, "심장에 깃들어 동맥 벽들에 전달되는 특수한 박동력은 아니다"가 추가된다.[42]이 변론은 여전히 편지들에서 동맥 벽들을 통해 전달되는 박동력을 주장하고 1638년 『의학의 기초』에서 이를 주장한 플렘피우스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연철학의 기초(Fundamenta physices)』(1646)에서 레기우스는 훌륭한 데카르트 주의자로서 동물에 관한 장에서 심장 운동 설명을 제시했다.[43] 그는 1641년 변론의 네 가지 원격 원인들을 재서술했지만, 심장 운동의 두 번째 근접 원인으로, 혈액의 희박화와 함께, 심장 섬유들에 모인 동물 정기를 추가했다.[44] 심장 운동 설명에서 정기의 운동을 추가한 것은 데카르트적 정신에서 문자에서는 아닌 발전으로 보인다. 동물 정기의 운동 작용은 데카르트에 의해 인정되지만, 순환의 원인으로는 결코 그에 의해 취해지지 않는다. 신체 전체를 통한 혈액의 전파는 모든 혈관에 이르기까지 (혈액의 운동과 정기의 운동 모두를 포함하는) 운동의 전달로서 기계론적으로 설명되며, 이것은 심장이 멈추고 혈액 흐름이 멈추었음에도 일부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혈관의 자발적인 수축과 팽창을 계속 보이는지를 설명한다.[45] 이 단계에서 이것은 동시대 의학 담론의 동향과 보조를 맞추며 데카르트 위에 구축되는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1649년 『정념론』에서 동물 정기 운동의 발전된 설명을 직접 제시할 것이다.
Baillet이 보고한 1640년 편지는 이미 이 발전을 시사했는데, 우리가 보았듯. 그러나 레기우스의 생리학에서 그를 데카르트의 추종자가 덜 되게 하는 하나의 추가적 전개가 있다. 1661년까지 심장 운동 기원에 대한 그의 설명은 데카르트적 발효에 이 동물 정기의 교반을 더한 이중 원인으로, 심장 장치에서 발견되는 특정 성질들에 의해 지지된다. 그러나 『자연철학(Philosophia naturalis)』 3판(1661)에서 레기우스는 동물 정기의 교반이 순환의 "주요한(praecipua)"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구절을 삽입하는데, 혈액의 발효가 신체 전반에 걸쳐 혈액을 밀어내기에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명시적으로 데카르트의 설명에 반하여 논거를 제시한다. "심장에서의 혈액 희박화가 아니라, 심장 섬유들에서 동물 정기의 운동이 맥박의 근접 원인들 중 주요 원인으로 취해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발전시킨다.
심장을 움직이는 근접 원인들 중, 여기서 필연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주요한 것은 뇌에서 신경을 통해 심장 섬유들로의 동물 정기의 매우 강력한 왕복 흐름이다. 혈액의 희박화, 비등, 또는 팽창이 일반적으로 심장에서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미약하며,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호흡론』에서 그리고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주장하듯) 동물의 심장에서 모든 동맥과 정맥을 통해 왕복으로 혈액 전체를 밀고 반발시키기 위한 주요하거나 유일한 근접 운동 원리가 되기에는 너무 약하다.[46]
해석을 시도해 보자면, 레기우스가 정기 흐름을 심장 운동의 병행 원인으로, 이후 주요 원인으로 추가한 것은 데카르트의 설명에 대한 증가하는 공격들을 대안적인 기계론적 설명으로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47] 레기우스는 데카르트주의적 설명이든 아니든 아리스토텔레스에 영감을 받은 갈레노스 생리학을 기계론으로 대체하려는 데카르트의 기획을 계속했다. 17세기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 생리학은 원래 운동 원인인 감각적 영혼에 종속된 여러 근접 원인들을 유지했다. 레기우스의 강한 유물론적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전문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혼에 관한 전통적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에 대한 데카르트의 반대를 더 명확히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리학의 공식들을 면밀히 읽고 하나의 일차적 원인에 종속된 근접 원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복합체를 포함하여 데카르트의 관념들로 각각을 대체했다. 레기우스는 말한다. "동물의 생명, 또는 그것의 생존 능력(facultas vivendi)은, 심장이라 불리는 특정 부분이 그 안에 있어 그것을 통해 흐르는 영양 즙이 가열되고 그 일부가 동맥을 통해 부양될 부분들로 밀려나가며, 이후 다시 가열되기 위해 연결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지속적으로 돌아오는 불로 갖추어진다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순환은 심장의 열에 의해 유지되는 생명 능력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감각적 영혼이라 부르는 감각과 운동의 능력(facultas sentiendi et movendi)은 정기들, 신경들, 그리고 다른 감각 기관들 속에서 동물의 부분들의 배치와 형태다"(강조 필자).[48]
레기우스는 명시적으로 데카르트에 반하면서 1660년대까지 자신의 반아리스토텔레스 생리학을 계속 밀어붙였다. 데카르트는 항상 학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공개적으로 도발하지 않도록 주의했는데, 주로 출판된 저작에서 그 명제들을 무시함으로써 그랬다. 정확히 레기우스의 공개적 공격이 플렘피우스 같은 정통성 수호자들이 심장 운동의 데카르트적 기계론적 설명에서 두려워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의학 과학의 틀이자 기준이었던 생명체의 질료형상적 구조를 약화시켰다. 플렘피우스와의 1640년 논쟁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기우스는 우유적 심신 결합을 옹호함으로써 신체와 영혼의 결합을 위태롭게 한다는 평판을 얻었는데, 이것이 1640년대 내내 위트레흐트에서 격렬하고 유명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데카르트의 남은 생애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 위트레흐트 논쟁은 뢰번에서도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필자가 다음으로 살펴볼 뢰번의 신학적 반응들은 데카르트의 생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정면 공격을 발전시키는 레기우스의 행보에 맞서 가장 잘 이해된다.
4. Libertus Fromondus (1587–1653)와 뢰번 단죄 (1662–1663)
1637년 플렘피우스가 『방법서설』과 에세이들을 받았을 때, 그는 데카르트의 지시에 따라 한 부를 동료이자 옛 스승인Libertus Fromondus에게 전달했다.[49] 프로몽두스는 강력한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 연구를 이끄는 인물로서, 데카르트가 설득해야 할 좋은 후보였다. 그는 또한 존경받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1637년에 그는 가톨릭 지식 체계의 무결성을 수호하는 사람으로서 확립된 명성을 갖고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진영에서 뢰번에서 두려워해야 할 목소리였음은 분명하다.[50]
프로몽두스는 데카르트에게 다소 직설적으로 답하며 가능한 한 정중하고 장난스럽게 그를 원자론자로 일축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쓴 원자론 반박 논문을 보내기도 했다.[51] 자연 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에서 두 번째 피타고라스나 에피쿠로스의 영광을 거의 비꼬듯 그에게 부여하면서, 저자의 명민함이 명확한 만큼 그의 저술에서 진리가 모호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데카르트가 깨닫지 못한 채 에피쿠로스의 "조잡한 철학"에 빠질까 두렵다고 했다.[52]
프로몽두스는 18개의 논쟁 조항을 제시했다. 『방법서설』의 일반 철학에 관한 세 개, 『굴절광학』에 관한 여섯 개, 『기상학』에 관한 아홉 개. 무엇보다 접근 방식이 실패한다. 실제 성질들을 기계론적 원리들로 환원하는 것이 때로 너무 지나친다.[53] 책 전반의 데카르트 설명들을 공격해 가면서, 그는 동물 자동론과 데카르트의 감각성 이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신체 감각들에 책임이 있는 심장의 기계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의 관심은 감각적 영혼을 지키는 데 있었다. "심장의 열이, 그것이 감각적 영혼이 아니더라도, 이성적 영혼의 것들을 제외하고 감각적 영혼의 모든 기능을 신체에서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적절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표현으로 계속했다.
그[데카르트]는 가열된 건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열이 이성적 영혼에 속하는 작용들을 제외하고 인간 신체에서 모든 동물적 작용들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따라서 건초의 열이 다른 감각적 영혼 없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등이다. 그토록 고귀한 작용들이 그토록 비천하고 조잡한 원인에서 나올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54]
이 논거를 밀어붙여 왜 건초의 열이 건초 자체를 보고 듣게 하지 않는가를 물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것이 정확히 조직된 물질에서 어느 수준의 복잡성이 달성되면 일어나는 것이라고 아마도 답할 것이다(기계 은유). 문제의 핵심은 이중적이다. 데카르트의 설명은 감각 세계와 물질 세계 사이의 구분 모두와 감각하는 동물들과 이성적인 동물들 사이의 구분을 없앤다. 두 번째 결과가 프로몽두스에게는 더 위협적이다. 심장의 데카르트적 기계론과 동물 영혼의 환원은 위험한 유물론으로 가는 길을 연다. 일반적으로 영혼에 귀속되는 작용들의 일부가 실제로 기제의 기능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면, 그 기제를 통해 영혼의 모든 작용들을, 그것의 순수한 지적 작용들도 포함하여, 설명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것은"무신론자들에게 길을 열어, 이성적 영혼에도 유사한 원인들[열에 의해 촉발된 운동]이 귀속된다."[55]
그는 데카르트에게 영혼의 불멸성 명제를 여전히 고수하는 것에 대해 편지 말미에 선제적으로 축하를 보냈는데, 그것이 마치 그의 다른 헌신들에도 불구하고 축하받을 만한 것인 양 다소 빈정대는 듯했다.[56] 프로몽두스의 우려는 앞서 본Henricus Regius의 저술에서 곧 분명한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자신은 그러한 불경스러운 함의들을 피하기 위해 공들여 멀리 있으려 할 것이다. 문제가 심장의 생리학에 관한 것만이 아니기에, 유물론을 피하고 이단에서 멀리 있으려는 그의 노력은 그를 영혼의 작용들 이론과 감각 이론을 통해 심장 운동을 설명하는 논거를 제시하도록 이끌 것이다. 데카르트는 프로몽두스를 위해 이 경로를 밟되 너무 간략하게만 한다. 프로몽두스의 이단 의혹에 대한 답변으로 데카르트가 내세우는 지성 없는 시각의 설명은 이 교환에서 데카르트가 행하는 최선의 논거이자 그의 방어의 열쇠다. 그는 동물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이 기계론적으로 설명된 감각들이 심신 결합을 통해 설명된 인간의 감각들, 즉 이성적 영혼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들과 같지 않다고 논거한다.
그[프로몽두스]는 동물들이 우리가 보는 것을 알거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그러하듯 본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이 에피쿠로스의 견해였으며 아직도 거의 보편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 나는 동물들이 우리가 보고 있음을 알 때 우리가 보는 것처럼이 아니라, 우리 이성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우리가 보는 것처럼만 본다는 것이 내 견해임을 꽤 명시적으로 설명한다. [...] 그러한 경우 우리도 자동 인형처럼 움직이며, 아무도 열의 힘이 그들의 운동을 일으키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57]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계속했다. 동물 영혼(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물적·감각적 기능들)은 순수한 혈액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는 이에 대해 편리하고 광범위하게 성경을 인용한다.[58] 생명체에서 운동을 낳을 영혼과 같은 능력은 없으며, 따라서 데카르트의 심장 생리학은 운동의 자연적·기계론적 원천을 상정하는 것이 정당하다. 프로몽두스의 요점은 심장의 기계론적 생리학을 통한 짐승과 인간 사이의 이 연속성을 상정하는 것이 위험한 유물론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반응은, 한편으로는 신체 기능들과 이성적 영혼의 작용들 사이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몽두스의 논거를 그에게 불리하게 돌려, 자신의 설명이 정통적인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 개념이 진정으로 이단적인 것임을 보이는 반격을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인간의 작용들과 동물의 것들 사이에 너무 적은 차이를 상정하므로, 나는 그들이 이성적 영혼과 감각적 영혼의 본성들 사이에 그처럼 큰 차이가 있다고 어떻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감각적 영혼의 개념적 비일관성에 대한 드문 비평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견해에서, 감각적 영혼이 홀로 있을 때 그 본성은 신체적이고 필멸적이다. 이성적 영혼과 결합할 때 그것은 영적이고 불멸적이다." 그것의 기능은 우스꽝스러운 것에 접근한다. "그들의 견해에서 동물에서의 감각은 인간의 이성보다 신과 천사들에서의 인식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AT I 415 / CSMK 62).
프로몽두스만이 데카르트 생리학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가상디, 홉스, 부르댕 또는 여섯 번째 이의 제기자들 모두 동물 영혼을 부정하고 인간의 감각적 영혼을 기계론화하는 것이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위태롭게 하며 무신론적 정신에게 그 기계론을 이성적 영혼의 작용들 자체로까지 확장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데카르트는 이를 자신의 기획의 범위에 대한 오해로 일축할 것이지만, 오명은 남았다. 그러나 기계론적 생명 원리 — 열 또는 발효 — 의 제안은 생명 기능들을 기계론화하는 위험한 발걸음일 뿐 아니라, 데카르트가 프로몽두스에게 제시한 심리물리적 구분을 위한 논거로 동등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 논거는 레기우스의 1646년 『자연철학의 기초』에서 전면에 나오고, 세기의 나머지 데카르트주의 변호론에서 사용될 것이다.
동물들에게 감각적, 상상적 또는 어떤 종류의 지성이든, 아무리 낮더라도, 또는 어떤 종류의 인식이든 귀속시킨다면, 인간의 이성이 개, 여우, 또는 원숭이의 영혼보다 덜 부패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연적 원인은 없다.[59]
프로몽두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640년대 말에 데카르트의 주요 출판물들이 시장에 나오면서 데카르트주의는 뢰번에서 힘을 얻고 있었다. Arnold Guelincx, Gérard Van Gutschoven, Guillaume Philippi 같은 교수들이 데카르트주의 명제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반대도 여전히 강했다.[60] 1653년 플렘피우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뢰번 대학에서 데카르트주의를 축출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별 성과가 없었다. 그는 여러 교수들에게 데카르트의 저술들을 논평하고 검열하고 단죄하도록 요청하는 회람 편지를 보냈으며, 받은 편지들을 오래된 반데카르트 논문인 『기초』(1653년판: Doctorum aliquot in Academia Lovaniensi Virorum Iudicia de Philosophia Cartesiana, pp. 375–387)의 부록으로 출판했다. 의도는 대학의 데카르트 주의자들에 대한 공식 단죄를 위한 청원으로서 뢰번 교수들의 "검열들"을 "비난(censurae)" 형태의 인신 공격으로 모으는 것이었다. 뢰번은 위트레흐트와 라이덴이 이미 데카르트주의를 단죄한 상황에서 이 새로운 철학이 자신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쫓아내도록 그냥 두려는가?[61]
플렘피우스 자신의 편지는 소규모 반데카르트 논고의 서문 역할을 한다. 그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철학이 데모크리토스의 부활이며 그렇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편지들은 이 판단을 상세히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플렘피우스가 모집한 기억할 만하지 않은 이름들 중에서, 데카르트가 제기하는 신학적 위험을 상세히 지적하는 프로몽두스의 검열을 유지하겠다. 성체에 관한 논쟁적 문제는 편지의 더 큰 부분이 헌정되어 있으므로 내려놓고, 프로몽두스는 성경에 위배되는 동물 영혼의 비존재라는 생리학적 요점과 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논거는 흥미롭다. 인간의 죽음과 노새의 죽음이 성경에 따르면 하나(unus)라는 사실이(p. 379a, unus interitus est hominis et iumentorum), 프로몽두스에 따르면, 인간과 노새의 영혼이 형상으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수반한다. 인간의 소멸은 물질에서 영혼의 분리, 즉 영혼에 의한 물질의 형성 과정의 끝이다. 비엔나 공의회는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 반하여 인간 영혼이 형성 형상(forma informans)이지 데카르트-데모크리토스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력 형상(forma assistens)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이것은 노새의 영혼도 형성 형상임을 수반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의 소멸이 인간의 소멸과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p. 379a). 프로몽두스는 실제로 여기서 플렘피우스를 통한 데카르트와의 교환을 되돌아보며(그는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p. 378b), 앞서 언급한 죽음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입장의 비일관성에 관한 플렘피우스에 대한 데카르트의 논평(AT I 514)에 이 논거로 답한다. 그러나 프로몽두스는 자기 대학의 데카르트 주의자들에 대한 매우 명확한 불만을 표명하기도 한다. 데카르트를 따르면서 그들은 학생들에게 영혼의 다양한 능력들과 생명 기능들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데, 이것들은 그들이 신학 공부로 나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학생들은 성 토마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을 더 쉽게 이해한다고 프로몽두스는 말하는데, 의학에서도 갈레노스를 더 쉽게 이해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그들은 영혼의 다양한 능력들과 기능들을 길게 다루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주의 훈련에서 신학으로 들어서면, 그 안에서 필요한 영혼의 기능들의 확산과 능력들의 도구들에 충격을 받아 이해하지 못하거나, 더 나쁘게는, 그것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17세기 중반에도 살아있는 중세적 견해인 프로몽두스의 매우 구식 입장처럼 보인다. 생리학은 그 자체를 위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신학을 위한 준비로 기여해야 하며, 운동만으로 생명 기능들을 설명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능력들이 영혼과 실재적으로 구분되는지 아니면 단지 객관적으로만 구분되는지에 대한 탐구는 신학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생리학에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일찍 밭을 수확하는 것과 같다.[62]
프로몽두스는 자신의 편지가 인쇄되기 전에(1653년에) 사망했지만, 데카르트의 저술들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그의 반데카르트 입장은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일관적이다. 1649년에 출판한 영혼의 기독교 철학(Christian Philosophy of the Soul)에 관한 교재는 이 반데카르트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63] Monchamp(1886, pp. 151–156)은 이 교재에서 데카르트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구절들을 뽑아내지만, 사실 프로몽두스는 출판된 책들에서 데카르트의 이름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64] 고대인들에 대한 그 특유의 감수성과 뢰번 교수직의 높은 자리에서, 프로몽두스는 그의 『영혼론(De Anima)』을 당대의 데모크리토스주의자들과 그들의 다양한 형태의 에피쿠로스 학파 제자들에게 향한다. 이것은 논쟁적 논고가 아니다. 하지만 1653년 편지의 회고로 본다면, 이 출판물에서 뢰번 교실들에서 기어오르는 데카르트주의의 위험에 대한 반응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이 시기 이 책의 출판은 플렘피우스의 『의학의 기초』에 대한 신학적 보완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로마 자체도 뢰번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662년 7월 3일 뢰번 대학 인문학부는 교황 사절의 문의에 대한 응답으로 대학에서의 데카르트주의 교리 확립을 논의하는 회의를 가졌다. 이것은 그런 회의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8월에 한 학사 학생이 일련의 데카르트주의 의학 변론을 진행하고 출판했다. 학생의 전단을 본 교황 사절은 거기에 제시된 데카르트주의 명제들을 인용하는 경고 편지를 대학 총장에게 썼다. "동물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논거들은 그럴 듯하지 않다. 동물이 살아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성적 영혼을 제외하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즉 [...] 다른 [종류의] 영혼도 성질도 새로 생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65] 1662년과 1663년에 추기경 성의회에 의해 발령된 단죄 법령을 동기화한 로마 검열관들의 최근 발견된 보고서들은 같은 동물 영혼 부재의 위험을 언급한다. 『정념론』에 관한 로마 검열관 Stephanus Spinula의 보고서는 정기의 운동을 통한 정념의 설명에 대한 단죄와 함께, 검열에 합당한 명제로 다음을 내세운다. "신체 구성원의 어떤 운동도 영혼에서 기원하지 않는다. 영혼이 신체에 운동과 열을 부여한다고 믿는 것은 오류다."[66] 플렘피우스는 이제 거의 반데카르트주의에 관한 저널 시리즈의 등가물이 된 『의학의 기초』4판(1664)에서 단죄에 대해 득의양양하게 보고할 것이다.[67]
5. 결론
동물-기계 교리의 비정통성에 관한 광범위한 견해는 데카르트가 심장 박동 설명에서 달성한 감각적 영혼의 환원을 통해 전파되었다. 뢰번 사건에서의 반데카르트 수용에 대한 이 검토에서, 데카르트 생리학의 단죄로 이어진 동기를 평가함에 있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은 『방법서설』에서의 데카르트의 생리학에 근거한 1637-1638년 프로몽두스와 플렘피우스의 편지들로 시작된다. 1637-1638년의 교환은 혈액 순환에 관한 학술적 방식의 논쟁에서 실제 불일치가 있는 데카르트 심장 박동 설명의 철학적 함의들로 빠르게 이행한다. 1637-1638년의 일치된 데카르트 생리학 거부는 두 교수의 후속 출판들에 의해 지속될 것이다. 프로몽두스의 편지는 플렘피우스가 반대한 심장 박동에 관한 데카르트 설명의 신학적 함의들을 명시한다. 심장 박동에 관한 데카르트와 플렘피우스의 논쟁은 1640-1641년의 레기우스의 변론들과 출판물들을 통해 계속된다. 수축기에 대한 하비의 분석을 활용하는 플렘피우스는 데카르트에 맞서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며, 순환 이론으로의 그의 개종은 데카르트의 승리로서가 아니라 이 배경 아래 보아야 한다. 플렘피우스의 반데카르트 운동은 프로몽두스의 신학적 단죄와 함께 1653년판에서 정점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로마가 1662-1663년에 플렘피우스의 노력을 확인한다.
Thomas Gariepy는 북부 저지대 국가에서 첫 번째 세대 데카르트 주의자들에게 하비의 혈액 순환 설명에 대한 데카르트적 독해가 "기계론적 생리학의 초석"을 대표했음을 보였다(Gariepy 1990, p. 316). 뢰번의 수용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데카르트의 심장학에 대한 첫 번째 반응들을 읽을 때, 한 가지 평가가 두드러진다. 심장과 혈액에서 운동 기원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 아리스토텔레스적 감각적 영혼의 질료 형상적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데카르트 기획의 핵심에 자리하며, 즉시 생리학적 문제를 넘어선 의학계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된다. 데카르트의 설명은 플렘피우스나 프로몽두스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주의 깊은 수호자들에 의해 읽히고 논의되며, 레기우스에게서 일찍 감지 가능한 유물론적 위험을 내세우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비의 혈액 순환 발견은 이 데카르트적 논쟁으로 끌어들여져, 플렘피우스가 하는 것처럼 데카르트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경향의 의사들에 의해 사용될 것이다. 이 단계에서 데카르트의 생리학의 신학적 좋은 사용에 대한 논거는, 레기우스에 의해서도 표명된, 불에 기름을 붓는 것 이상이 아니다.[68] 이것은 생리학적 설명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데카르트를 통한 하비의 혈액 순환 발견의 전파가 어느 정도까지 신학적 제약들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의도치 않게, 데카르트는 자신의 심장 운동 설명의 수용이나 거부가 자신의 철학적 기획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할 때 역사적 선견지명에서 멀지 않다.
[1] Scholars tend to acknowledge that Descartes’ account of the motion of the heart was more successful than that of Harvey. Fuchs (2001), p. 2: “Harvey’s discovery, as well as Harvey himself, was and is seen chiefly from a perspective that was determined to a great extent not by him, but by Descartes.” French (1989), p. 47: “The doctrine of the circulation of the blood had its greatest impact in the Low Countries in conjunction with Cartesian mechanism.” Grene (2005), p. 93: “as the idea of the circulation came to be accepted, it was in fact Descartes’ view of the heart’s motion that was, in many cases, accepted as the more persuasive account.”
[2] See Fuchs (2001). Fuchs speaks of “the vital aspect of the circulation” (Part C, “Harvey”) and of “the mechanical aspect of the circulation” (Part D, “Descartes and his followers”). The classic study of Étienne Gilson (1930) is the ªrst to have explored the issue in depth. Weil (1957) contains a useful list of early works referencing Harvey’s De Motu. For more recent studies, see French (1989, 1999); Grene (1993, 2005); Gorham (1994); Anstey (2000); Aucante, “Appendice 6” in Descartes (2000). For recent studies on Descartes’ physiology in general, see Bitbol-Héspèries (1990) and Aucante (2006).
[3] Preface to Fuchs (2001) xiii, a thesis developed in Grene (2005).
[4] Riolan (1649), p. 44, inGilson (1930), p. 96.
[5] I use “Aristotelian” as a label much in the loose sense that the seventeenth-century anti-traditionalist rhetoric used it; here it should pick up authors adhering to the Aristotelian-inspired doctrine of the tripartite function of the soul.
[6] 가생디는 하비를 읽고 그에 대해 메르센에게 편지를 썼으며, 메르센은 데카르트에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AT I 264). 데카르트는 1632년 11월 또는 12월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당신이 예전에 말씀하셨던 『심장의 운동에 대하여』를 보았으며, 비록 이 주제에 대한 집필을 마친 후에야 그것을 보게 되었지만, 그의 견해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AT I 263). 데카르트는 하비를 읽기 전에 『인간론』을 집필한 것으로 여겨진다. 데카르트가 메르센에게 보낸 편지(1635–1636년으로 추정)와 비교하라: "런던에 하비라는 이름의 어떤 유명한 의사가 심장의 운동과 혈액순환에 관한 책을 썼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하십니까? 그는 어떤사람입니까? 사실 그는 심장의 운동에 대해 다른 곳에 이미 없던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나는 모든 점에서 그에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혈액순환에 관한 한 그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가 최초의 발견자였다는 점에서 그에게 영예가 돌아가야 하고, 의학은이 점에서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AT IV 699–700).
[7] 상기시키자면, 핵심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심방이 수축하고, 수축하는 과정에서 혈액을 [...] 심실 안으로 밀어 넣는다. 심실이 채워지면, 심장은 곧바로 일어서며, 모든 섬유를 긴장시키고, 심실을 수축시키며, 박동을 수행한다. 이 박동을 통해 심장은 심방에서 공급받은 혈액을 즉시 동맥으로 내보낸다." Harvey (1989), p. 31. 두 심장박동 이론에 대한 좋은 비교 설명으로는 Anstey (2000), pp. 421–423을보라.
[8] 데카르트는 『인체 기술』의 설명에서(AT XI 239–244) 여러 문제에 대해 하비에 명시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pp. 243–244와 비교하라: "이제 하비가 기술하는 방식으로 심장이 운동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그 운동을 일으키는 어떤 기능을 상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그 본성은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렵다—혈액이 심장 안에 있는 동안 혈액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기능들의 존재도 가정해야 한다." S. Gaukroger의 번역, Descartes (1998), p. 181 (CSM I 318의 해당 구절은 다소 불명확하다; 달리 명시되지 않은 경우 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박동 기능(pulsific faculty)"은 갈레노스에게서 친숙한 개념으로, 갈레노스는 이를 동맥벽에 깃든기능으로서 동맥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였다.
[9] For Descartes’ mechanization of the idea of innate heat, see among others Hall(1970) and Bitbol-Héspèries (1990), pp. 67–102.
[10] Treatise on Man: AT XI 123–127, Discourse: AT VI 46–55, Description of the Human Body: AT XI 228–245, Passions of the Soul: AT XI 331–334; Letter to Beverwijk, 5 July 1643, AT IV 3–6. A. Georges-Berthier’s thesis (Georges-Berthier 1914), that Descartes was not too concerned with the origin of the heartbeat in his early writings, has been rejected by Aucante in Descartes (2000), p. 245, who points to two early fragments (AT XI 524). Aucante takes the first redaction of the Description to be immediately after the Discourse and to continue in 1638, which is consistent with the discussion from 1637–1638 that I am following (Descartes 2000, p. 19).
[11] AT VI 46–47 / CSM I 134. ”Projet d’une science universelle” is the projected title for the book of 1637, as per the letter to Mersenne of March 1636, AT I 339 / CSM III 51.
[12] 데카르트는 플렘피우스에게 『방법서설』과 『시론들』 세 부를 보냈고, 플렘피우스는 그 중 한 부를 프로몽뒤스에게, 한 부는 예수회 신부 프랑수아 푸르네에게 전달하였다(AT I 399). 1637년 9월 13일 프로몽뒤스가 플렘피우스를 통해 데카르트에게 보낸 편지(AT I 402–409)는 해당 저서에 대한 신학자의 여러 반론을 담고 있다(아래 제3절 참조). 데카르트는 1637년 10월 3일자 편지(AT I 413–431)에서플렘피우스를 통해 프로몽뒤스의 반론에 답한다. 프로몽뒤스는 답하지 않지만, 논의는 플렘피우스와 계속된다. 데카르트는 1637년 12월 20일자 편지(AT I 475–477)에서 플렘피우스에게 프로몽뒤스의 반론에 대한 몇 가지 소견을 덧붙이고, 심장 운동에 관한 플렘피우스의 의견을 구한다. 플렘피우스는 1638년 1월 편지(AT I 497–499)로 답하면서 심장 운동과 혈액순환 양쪽에 대해 간략한 반론을 제기한다. 데카르트는 1638년 2월 15일자 편지(AT I 521–534)로 상세히 답변하고, 플렘피우스는 3월에 답하며(AT II 52–54), 데카르트는 1638년3월 23일 두 번째 답변을 보낸다(AT II 62–69). 1638년 4월 20일자 플렘피우스의 답장은 유실되었다. 데카르트는 이 서신 교환을 출판하는 것을 고려했으나(1638년 8월 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 AT II 343–345 참조), 플렘피우스가 이를 거절했다가 결국 스스로 출판하였다.
[13] 플렘피우스는 1630년대 초 암스테르담에서 데카르트와 자주 교류했다고 증언하는데, 당시 데카르트는 해부 재료를 쉽게 구하기 위해 정육점 거리에 살고 있었다. Plempius (1653), p. 375 및 AT I 401 참조. Baillet (1691), vol. 1, p. 312는 다음과 같이 쓴다: "데카르트는 당시 플렘피우스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 여겼으며, 플렘피우스 역시 이 우정으로부터 자신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영예와 이점을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14] On Plempius, see Tricot (2000); Monchamp (1886), passim; Aucante (1999); French (1999); Descartes (2003), pp. 287–288; Vanagt (2011). CSMK 389 wrongly gives 1661 as the year of Plempius’ death. For a general overview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of Leuven during this time, see de Wulf (1908), pp. 454–473 and Monchamp, (1886), pp. 3–27.
[15] 5 October 1637: “Quæ de motu cordis muginari te scribis avidissime expecto,” AT I 411; 20 December 1637: “Ideoque etiam tuas de motu cordis avide expecto,” AT I 477.
[16] AT I 499: "당신이 하비와 함께 주장하는 혈액순환에 반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논거들을 제시한다. 1. 동맥혈과 정맥혈이 그렇다면 완전히 유사할 것이고, 심지어 동일할 것인데, 이는 직접 관찰에 반한다. 동맥혈은 더 밝고 선명한 색을 띠는 반면, 정맥혈은 더 검고어둡다. 2.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정맥들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어 간헐열만을 일으키는 열성 물질은, 하루에 더 많은 발작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즉 그 혈액과 동시에 열성 체액이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횟수만큼, 발작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 귀환이 하루에 백 번, 심지어 이백 번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3. 살아있는 동물에서 다리로 향하는 정맥들의 대부분을 묶고 동맥들은 열어둔다면, 혈액이 동맥을 통해 계속 흘러들어오고 정맥을 통해서는 나가지 못하므로, 그 다리는 짧은 시간 안에 놀랍도록 부어올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정맥을 오래 묶어두면 영양 공급의 결핍으로 해당 부위가 쇠약해진다."
[17] This argument is already given in the Discourse, AT I 52.
[18] I refer to Grene (1993) for more details on these arguments; here I am more concerned with the discussion on the origin of motion in the heartbeat.
[19] AT II 54: “Cætera quæ dicis pro circulatione sanguinis, satis bene se habent, neque ea sententia valde displicet.” For Aristotle, see De Respiratione, 20, 480a.
[20] AT I 497: “Galenus noster contra a facultate aliqua cor moveri docuit, et omnes hactenus id docemus Medici, a quibus quod adhuc stem hæ faciunt ratiunculæ.”
[21] The experiment is a common place for early modern Galenists. See Grene (1993), pp. 327–328, for a report on it.
[22] See especially Gilson (1930) and Grene (1993).
[23] AT II 5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속적인 견해를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몸에서 적출된 인간의 심장에는 영혼이 없고, 따라서 그에 따른 기능도 없지만, 영혼의 도구는 얼마간 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영혼의 역능 안에서 작용하는 정기(spiritus)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갑자기 목이 잘린 사람의 시신에서도, 열과 생명의 정기가 시신 안에 남아 있는 한, 살아있는 사람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양분의 흡인과 소화와 동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24] AT II 64–65: "당신은 방어하기 어려운 요새를 맡은 저 뛰어난 장군들을 본받으려 하는 것 같다. 그들은 포위군에 저항할 수 없음을알면서도, 그렇다고 즉시 항복하지는 않고, 오히려 모든 무기를 먼저 소진하고 온갖 최후의 수단을 시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리하여 패배하면서도 승리자들보다 더 많은 영광을 얻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데카르트는 동시에 프로몽뒤스로부터도 같은 논거를 받고 있었는데(아래 참조), 이것이 이 반박을 촉발했을 수 있으며, 복수형의 사용은 프로몽뒤스와 플렘피우스 양쪽 모두를 향한 것으로 읽힐 수있다.
[25] 몇 년 후인 1643년, 네덜란드 의사 요한 판 베버르베이크(Beverovicius, 1594–1647)는 이 서신 교환에 관심을 보이며, 혈액순환에 관한 데카르트의 플렘피우스 편지를 요청하면서, "중요한 인물들"의 편지 모음집에 출판하겠다는 의도로 데카르트를 유인한다. 데카르트는 그에게 전체 자료를 보낸다. 즉 플렘피우스의 편지 두 통과 자신의 답장,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에서 작성한 메모를 함께 보냈다. 판베버르베이크는 실제로 이것들을 자신의 『서한 문제집(Epistolicæ Quæstiones)』 판본(1644; Post 1979에 번역)에 출판하였다. 이후 보헤미아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1645년 5월 24일 데카르트에게 보낸 편지(AT IV 210)에서 이 서신 교환에 대한 지식을 보여준다. 하비 자신도1649년 장 리올랑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데카르트의 순환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심장의 운동에 대하여』의 영어판은드 바크의 부록에서 플렘피우스와의 서신 교환에서 나온 데카르트의 뱀장어 생체해부 실험을 인용하고 있다: Harvey (1653) p. 118. 서신에서의 다른 언급들에 대해서는 AT I 508, 515, pp. 651–652 참조. AT IV 180에는 마르틴 스흐오크의 『경탄스러운 방법(Admiranda methodus)』에서 나온 데카르트-호에티우스 논쟁에서의 플렘피우스 편지 참조가 있다.
[26] 『의학의 기초(Fundamenta medicinæ)』(1644), 115a: "처음에는 이 발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이를 공개적으로 말과 글로 증언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것을 반박하고 논파하려 더욱 열심히 매달릴수록, 오히려 내가 반박되고 논파되었다. 그의 논거들은 설득하는 것이아니라 강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든 논거를 꼼꼼히 검토하였고, 이를 위해 여러 마리의 개를 생체해부하여 그것들이 지극히 참됨을확인하였다.
[27] Harvey (1653), Wood의 서문, p. 12에서 플렘피우스의 전향에 대해: "이것은 그의 판단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이다. 이로부터 나는다른 이들에게도 공정함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모든 증오를 내려놓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여, 마침내 플렘피우스와 함께 하비를 좋게생각하게 될 것이다." Wood는 플렘피우스의 해당 구절 전체를 인용한다(pp. 11–12).
[28] 같은 책. 하비를 확인하는 결찰 실험에 관한 발라이우스의 실험(1641)에 대해서는 Pagel (1976), pp. 113–135 참조. 네덜란드인인 플렘피우스는 1630년대 초 레이던이나 암스테르담에서 발라이우스와 알게 되었을 것이다.
[29] Fuchs (2001), p. 129: "실제로 데카르트는 플렘피우스로 하여금 하비의 순환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Grene, Fuchs (2001)의 "역자 서문", p. xii: "실제로 순환론에 대해 수많은 반론을 제기했던 플렘피우스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논거들(그리고 관찰들!)에 의해 전향하였다." Gorham (1994), p. 216, n. 22: "데카르트는 결국 플렘피우스를 순환 가설에 대해 전향시키는 데 성공한다."
[30] "혈액순환에 관한 것들로서 당신이 내가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신이 좋다고 판단하는 대로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그것들을 당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며, 내가 받아들인 것들 중 가장 강력한 논거들 사이에 마땅히 놓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원한다면,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다만 여기저기에 몇 가지 표현을 형편에 맞게 삽입하되, 그것들이 참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흥미로 혹은 나의 요청으로 그것들을 제시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표현이라면 몰라도." AT II 344. 이는 플렘피우스의 유실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31] 나는 플렘피우스가 "데카르트가 아니라 하비에 의해 설득되었다"는 것을 외재적 논거들(플렘피우스가 충실했던 의학 전통)로부터도출하는 French (1989), p. 79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의 견해는 French의 것보다 더 강하다. 즉 플렘피우스로 하여금 하비를 받아들이도록 밀어붙인 것은 바로 데카르트와의 대결이었으며, 이는 심장 박동 문제를 통해, 데카르트에게서 감지된 유물론에 맞서는 방편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32] "생명 기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중적이다. 양쪽 모두 자연적 기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심장의 운동은 혈액의 발효가 아닌 박동기능에 의해 일어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에 반하는 것이다. 동맥 운동에 관한 하비의 견해가 참이다. 박동 기능은 심장안에서 이중적이다." 『의학의 기초』(1644), 150b. 박동 기능(심장 근육을 동맥의 운동과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갈레노스, 『신체 부위의 용도에 대하여(De usu partium)』, 제6권, 제17장 참조.
[33] 하비의 『심장의 운동에 대하여』 텍스트와 비교하라: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나에게는 심장의 운동이 일종의 전반적인 긴장으로이루어진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섬유의 방향을 따른 수축이자 모든 방향에서의 긴축이 그것이다. 심장은 활동하는 동안 곧추서고, 단단해지며, 크기가 줄어든다. 이 운동은 근육들이 힘줄과 섬유의 방향을 따라 수축할 때의 운동과 분명히 동일한 성질의 것이다." R. Willis 번역, Harvey (1989), p. 22.
[34] 몽샹(Monchamp, 1886), p. 137은 바이에를 인용하며 레기우스가 플렘피우스에게 편지를 썼다고 잘못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평소 정확성에 비추어 이례적인 오류이다. 바이에(Baillet, 1691), vol. 2, pp. 36–37은 레기우스가 플렘피우스가 아니라 데카르트에게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레기우스 씨는 이토록 불성실한 처신에 격분하였으며, 자신의 책을 데카르트 씨가 약 2년 전에 그의 반론들에 대해 했던 답변들과 대조해본 후, 이 일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데카르트 씨에게 표현하기 위해 펜을 들게 만든 격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가 편지에서 플렘피우스 씨의 배은망덕과 불성실함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너무도 생생하여, 그토록 비열한 처신에 대한 유사한 분노의 격정에 빠지지 않고서는 그것을 그의 언어에서 우리의 언어로 옮길 수가 없다."
[35] 『혈액순환에 관한 의학·생리학 논쟁(Disputatio medico-physiologica pro sanguinis circulatione)』 (…) 앙리 드 루아(D. Henrici De Roy) 씨의 주재 하에 (…) 연습을 위해 요하네스 하이만누스(Iohannes Haymannus)가 (…) 6월 10일에 공개적으로 변론을 시도할 것이다(위트레흐트: 1640). 해당 텍스트는 AT III, pp. 727–734에 재수록되어 있다.
[36] AT III 732: "이 지극히 고귀하고 비할 데 없는 르네 데카르트 씨의 지극히 참된 견해를 루뱅 대학의 의학 교수 플렘피우스가 최근 사적인 서신을 통해 흔들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논거들에 대해 그에게 더없이 견고하게 답변이 이루어지고, 충분히 넘치도록반박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적으로 이루어진 일을 데카르트 몰래 공개적으로 만들고 학자들의 모임에 판단을 맡기는 것을 좋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 논쟁의 주재자로서 여기에 자신의 판단을 개진하자면, 그가 『의학의 기초』라고 부르는 책에서 이 문제를단지 요약으로써(그 자신의 말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희생시키면서, 또한 충분히 성실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반론들과 재반박들에 대한 답변들을 부분적으로는 훼손하고 왜곡하였으며, 부분적으로는 어떤 술책으로 묵살하였기 때문이다." 강조는 인용자.
[37] "내가 답변들을 단지 요약으로써(당신의 말대로)가 아니라 진실을 희생시키면서, 충분히 성실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술하였으며, 그것들을 부분적으로는 훼손하고 왜곡하였으며, 부분적으로는 어떤 술책으로 묵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의학의 기초』(1644), p. 152a, 강조는 원문. 이는 앞의 각주에서 인용된 레기우스의 논쟁(AT III 732)으로부터의 직접 인용이다. 데카르트가 베버르베이크에게 보낸 편지, 1653년 7월 5일과 비교하라. 거기서 데카르트는 같은 표현으로 플렘피우스에 대해 다시 불평한다: "그러나 그것에 관한 몇 가지반론들이 6년 전에 루뱅에서 나에게 보내졌고, 나는 그 당시 그것들에 답변하였다. 그런데 그 저자가 나의 답변들을 불성실하게 왜곡하고 훼손하여 출판하였기 때문이다." AT IV 6, 강조는 인용자.
[38] "그러나 우리는 달리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새 그릇이었을 때, 다른 향기가 우리에게 스며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AT I 400. ["새 그릇(testæ recentes)"이라는 표현은 암포라 같은 도기 그릇을 가리키는 것으로, 새 그릇은 처음 담긴 내용물의 향기를 오래 간직한다는 로마의 속담에서 온 것입니다. 호라티우스의 『송가(Epistulae)』에도 나오는 표현이죠. 즉 플렘피우스가 젊었을 때 갈레노스 전통에 "물들어" 그것을 평생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데카르트가 쓴 것입니다.]
[39] 바이에(Baillet, 1691), vol. 2, p. 37: "데카르트 씨가 심장 박동을 함께 일으키는 여러 원인들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플렘피우스는 단하나의 원인만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열이다.
[40] 레기우스에 대해서는 De Vrijer (1917); Verbeek (1988), (1992), (1994); Gariepy (1990); Alexandrescu (2012), pp. 155–186 참조
[41] "심장에서 소화가 일어난다. 즉 나머지 신체로부터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에 섞인 유미(chymus)가, 간에서 그것과 함께 준비된 후, 박동적 끓음(ebullitio pulsifica)을 통해 참되고 완전한 혈액으로 변환된다." 『생리학(Physiologia)』(1641), 20, Bos (2002), p. 213 수록.
[42] "따라서 저 경이로운 심장과 동맥의 운동은, 심장 안에 있는 혈액의 끓음—이것이 그것의 지속적 원인이다—외에도, 네 가지 선행원인들에 의해 완성된다. 첫째는 심장으로 들어오는 혈액의 팽창 적합성이고, 둘째는 심장의 열이며, 셋째는 각각의 박동 후에 불타오르거나 발효소처럼 심장 안에 남아 있는 혈액의 일부이고, 넷째는 심장과 그 혈관들의 형태이다. 그러나 심장에 내재하여 동맥의 막들에전달되는 특수한 박동 기능에 의한 것은 아니다." 『생리학』(1641), 21, Bos (2002), p. 214 수록.
[43] p. 181. 해당 장은 동물 일반을 다루며, 이후 비이성적 동물(짐승에 대하여, De Bestiis)과 이성적 동물(인간에 대하여, De Homine)에관한 별도의 장들이 이어진다.
[44] "따라서 저 경이로운 심장과 동맥의 운동은, 심장 안에 있는 혈액의 희박화와 심장 섬유들로의 동물 정기의 유입—이것들이 그것의근접 원인들이다—외에도, 등등." 같은 책, p. 181.
[45] Idem, p. 182.
[46] 『자연철학(Philosophia naturalis)』(1661), pp. 305–306: "심장을 움직이는 근접 원인들 중에서,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확립되어야 할 것은, 뇌에서 신경을 통해 심장 섬유들로 향하는 충분히 강한 동물 정기의 상호적 유입이다. 왜냐하면 심장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혈액의 희박화, 발효, 혹은 팽창은 너무 미미하고, 따라서 너무 약하여, 아리스토텔레스(『호흡에 대하여』)와 데카르트(『방법서설』)가 확립하듯이, 전체 동물 신체의 동맥과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부터 그리고 심장을 향해 혈액 전체를 주요한, 더 나아가 유일한근접 운동 원리로서 밀어내고 다시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47] 내가 1661년판에서 제시하는 이 구절은 토마스 푹스의 레기우스 심장 생리학 설명(Fuchs 2001, pp. 146–148)에 추가되어야 한다. 레기우스의 추가 내용은 이전 판들의 텍스트 안에 하나의 단락으로 분명하게 삽입되어 있다. 푹스가 심장 운동의 공동 원인으로서 동물 정기에 관한 레기우스의 설명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1661년의 반데카르트적 입장을 추가하지 못하고, 레기우스를 전반에 걸쳐 데카르트주의자로 읽고 있다. de Vrijer (1917), p. 215도 참조하라: "그의 주요 저작들에서 레기우스는 그 데카르트적 생리학을 유지하였다" 등등.
[48] 『물리학의 기초(Fundamenta physices)』(1646), 153: "동물의 생명, 혹은 그것의 생존 기능은, 그 안에 불만큼 뜨거운 열을 갖춘 어떤부분이 있다는 것에 있으며, 그것을 심장이라 부른다.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영양즙은 그 안에서 가열되고, 동맥을 통해영양을 공급받을 부분들로 밀려 나간다. 그리고 나서 다시 가열되기 위해 연속된 정맥들을 통해 심장으로 끊임없이 환류한다. [...] 감각하고 운동하는 기능, 즉 통속적으로 감각적 영혼이라 불리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동물 정기, 신경들, 그리고 기타 감각 기관들로의 [...] 조율과 형성이다."
[49] Plempius calls Fromondus his “parent” (parens), AT I 399.
[50] 프로몽뒤스는 얀센주의 역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코르넬리우스 얀세니우스의 제자이자 친밀한 친구로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개정과 출판을 도왔으며, 1635–1636년에 얀센주의 논제들을 둘러싸고 칼뱅주의자 헤이스베르투스 호에티우스와 유명한 논쟁을 벌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주의와의 복잡한 유혹의 이야기 속에서 이단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결국 악명 높게도 양쪽 모두를 논박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Pantin (2001) 참조. 프로몽뒤스의 경력에 대해서는 몽샹 외에Ceyssens (1963)과 Garber (1988) 참조. 프로몽뒤스는 수사학과 철학 교수직을 거친 후, 1634년부터 루뱅에서 신학 교수직을 맡았다.
[51] 『미로, 혹은 연속체의 구성에 대하여(Labyrinthus sive de compositione continui)』(앤트워프, 1631). 이 책은 라이프니츠가 『신인간지성론(Nouveaux Essais)』(2, 23, 31)과 『신정론 시론(Essais de théodicée)』(예비 담론, 24)에서 논거들의 개요서로 사용하고 있다.
[52] 데카르트는 공개적으로 체면을 유지하려 하면서, 하위헨스에게 "우리 사이의 논쟁은 체스 게임에 더 가까웠고, 우리는 여전히 좋은친구로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AT II 660). AT I 449와 비교하라: "실제로 나는, 나에게 제기되는 가장 강력한 반론들이 내가 저술한 것들을 확립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제기했던 가장 약한 반론들만도 못하다는 것을 볼 때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하위헨스에게프로몽뒤스에 대해 했던 답변들을 보내는데, 후자는 이에 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으며, 어느 시점에서 데카르트는 그것들의 출판을 고려하기도 한다—AT II 345의 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53] AT I 408: "그는 다른 실재적 성질들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을, 혹은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오직 위치나 국소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너무 많이 기대한다."
[54] AT I 403: "그는 달구어진 건초에서와 같은 열이, 이성적 영혼 고유의 작용들을 제외하고, 인간 신체에서 동물의 모든 작용들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건초의 열이, 다른 감각적 영혼 없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등등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고귀한 작용들이 이토록 비천하고 조잡한 원인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55] "이로부터 아마도 무신론자들에게 길이 열려, 그들이 이성적 영혼의 작용들도 유사한 원인에 귀속시키고, 그것을 인간 신체에서 배제하거나, 혹은 적어도 비물질적 영혼 대신 물질적 영혼을 우리에게 억지로 집어넣을 것이다." AT I 403.
[56] "또한 그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이 짧은 삶 이후의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우리와 함께 갖는다는 것이 나를 더욱 기쁘게 한다." AT I 408.
[57] AT I 413 / CSMK 62. 홉스에 대한 「답변들」에서 이미지와 사유의 구별에 관한 부분, 특히 홉스의 여섯 번째 반론에 대한 데카르트의 답변과 비교하라(AT VII 182 / CSM II 128): "짐승들은 사유 안에서조차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등등.
[58] AT I 414: "성경과 함께 나는 굳건히 믿으며, 틀리지 않는다면 분명히 설명했듯이, 짐승들의 영혼은 혈액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심장에서 가열되고 희박화되어 정기로 변한 후, 동맥을 통해 뇌로부터 모든 신경과 근육으로 퍼져나가는 그 혈액이다" 등등.
[59] 『물리학의 기초(Fundamenta physices)』(1646), 242: "그리고 실로 만약 우리가 짐승들에게 감각적, 상상적, 혹은 그 어떤 다른 아무리 하찮은 지성이라도, 혹은 어떤 종류의 인식이든 귀속시킨다면, 인간의 정신이 개나 여우나 원숭이의 영혼보다 더 불멸한다고 말할 수있는 자연적 근거가 전혀 없게 된다." 데카르트적 변증론과 그의 영혼 개념을 옹호하는 논거들에 대해서는 Fowler (1999) 참조.
[60] Monchamp (1886), 제12장(아르놀트 휠링크스), 제15장(헤라르트 판 휫스호번), 제16장(기욤 필리피) 및 곳곳 참조. 반면 카르멜회 교수 프랑수아 크레스팽(보나-스페스)은 자신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전반에 대한 주석(Commentarii in universam Aristotelis Philosophiam)』(1652)에서 데카르트를 실체적 형상을 거부한 인물로 언급하면서 "프로몽뒤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nec multum abest Fromondus)"고 쓴다(Monchamp 1886, p. 211).
[61] 『기초(Fundamenta)』(1653), 377b.
[62] 『의학의 기초(Fundamenta medicinæ)』(1653), p. 380b: "한편 젊은 철학자는, 국소 운동이나 그러한 상태들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있다고 자신하는 저 철학적 유희들로부터, 상급 학교로 올라가 영혼의 다양한 기능들의 풍부한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게 될 때, 경악하거나 아무런 개념도 갖지 못한 채 남겨지지 않으려면, 신학에서는 성 토마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을, 당신들의 의학에서는갈레노스와 의사들을—영혼의 능력과 기능에 대해 그토록 많고 다양하게 논하는—더 쉽게 이해할 것이다." Monchamp (1886), pp. 253–256 참조.
[63] 『영혼에 관한 기독교 철학 4권(Philosophiæ Christianæ de Anima libri IV)』(루뱅: 1649).
[64] Monchamp (1886), pp. 151–156.
[65] 드 베키의 편지, Monchamp 1886, pp. 362–364 및 Armogathe and Carraud (2001), p. 130 수록: "짐승들에게 영혼을 귀속시키는 논거들은 개연성이 없다. 짐승들이 살아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 이성적 영혼을 제외하면—즉 내가 저자가 이해하는 바대로 파악하는 한에서—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영혼도, 어떠한 성질도 새롭게 산출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기때문이다."
[66] Armogathe and Carraud (2001), p. 112는 스테파누스 스피눌라의 검열 텍스트를 제시한다: "3. 신체 지체들의 어떠한 신체적 운동도영혼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영혼이 신체에 운동과 열을 부여한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67] "이와 같이 로마 교회의 딸이자, 사도좌의 버팀목이자, 참된 교의의 수호자인 신학의 신성한 학부에 의해 루뱅에서 시작된 것이, 추기경들의 신성한 성성(聖省)에 의해 완수되었다." 1664년판 서문, xx, Monchamp (1886), p. 392에서 인용.
[68] 이후 데카르트의 변론은 어느 정도 영향력을 얻게 된다. 앙투안 아르노의 데카르트주의 옹호는, 그것이 동물계와 이성적 인간 사이의 간극 및 인간 영혼의 분리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나 토마스주의보다 더 나은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생체해부와 같은 실험들을 통해 사실상 입증될 수 있는, 더 단순하고 명료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한레기우스의 것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아르노의 논거들에 대해서는 Fowler (1999), 제3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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