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naby R, Hutchins, Does Descartes Have a Principle of Life? Hierarchy and Interdependence in Descartes’s Physiology
Abstract : 데카르트에게서 살아 있는 신체-기계의 작동을 지배하는 하나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신체-기계는 다양한 상호독립적인 체계를 통해 작동한다.
1. 서론
데카르트의 생리학 및 의학 저작에서 데카르트는 ‘생명의 원리’, ‘운동과 생명의 원리’, ‘신체의 모든 기능들 아래에 있는 원리’ 등의 말을 사용하는데, 이때 이 원리는 일반적으로 ‘심장의 열’로 간주된다(대표적 해석자 : Bitbol-Hespériès, 1990). Shapiro 역시 데카르트에게서 인간 신체가 기계로 기술되며, 그것의 작동이 심장에 있는 열—이것은 생명의 원리이다—로인해 추동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생명에 대한 원리를 그의 생리학의 기초로 바라보는 입장은 매우 일반적으로받아들여져왔다. (Aucante, 2006, p. 164; Des Chene 2001, pp. 3, 26; Fuchs 2001, p. 131; Gaukroger, 2008, pp. 10-11; Shapiro, 2011, pp. 272-3, 282; Smith 2007, p. 624).
하지만 이 논문은 이 독해에 도전한다. 이 논문은 (1) 데카르트가 생명의 원리에 대해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주장들과 (2) 이 표면상의 원리가 그의 생리학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역할 사이의 구분한다. 저자의 입장은 (2)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단일한 원리가 없다는 것이다. (1)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생리학적 설명은 신체를 그러한 원리를 가질 수 없는방식으로, 즉 위계적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구조화된 것으로 제시한다. 신체 자체가 상호의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것은, 주요 신체 계통들이 그것을 ‘추동하는’ 근저 원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인식론적 차원에서도 단일한 근저 원리는 있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신체에 대한 데카르트의 설명 역시 상호의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서, 생리학에 관한 앎은 어떤 일차적인 ‘출발 항’에 의해 정초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요 계통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앎에 의존한다. 이는 생명 기능들 자체도, 우리의 그것들에 대한 앎도 단일한 원리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저자의 입장은 데카르트에게 심장의 열은 최소한 순환, 호흡, 그리고 소화(4.1절을 보라)에 의존하며, 이 모든 후자들은 상호적으로 심장의 열과 다른 것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브라운(2011, pp. 11-13)은 데카르트의 생식에 대한 설명(배아발생론)에서 상호의존성을 확인한 바 있다. ‘한 기관이 형성되고 기능하는 과정은 다른 기관들이 형성되고 기능하는 과정과 독립적이지 않으며, 이 상호의존적 과정들의 전체 기질은 비교적 폐쇄된 시스템[…]이 성립할 때까지 지속된다.’ 여기에서 나는 이 상호의존성이 살아있는 신체의 지속적인 상태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생명 원리(표면상의 원리)에 대한 그의 다소 기이해보이는 취급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나의 의도는 데카르트의 비일관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논문의 목적은 데카르트의 생리학이 함축하는 귀결들을 끌어내어, 거기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가 스스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소 다르며, 어쩌면 더 흥미롭다는 점을 보이는 데 있다.
논문의 구성 : 2절 – 심장의 열이 과연 생리학의 출발 항이거나 그것을 추동하는 동력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들 제시. 3절 – 심장의 열에 대한 데카르트의 설명들 제시. 4절 – 주요 신체 기능들이 상호의존적임을 보이는 그의 생리학에 대한 구성적 독해 참조. 5절 – 상호 의존성 독해가 데카르트의 심장 열 취급 방식을 더 잘 해명함을 보인다. 6절 – 상호의존적 독해가어떻게 단일한 근본 원리의 필요성을 불식시키는지 보인다.
2. 원리들
데카르트가 ‘생명의 원리’라는 말을 쓸 때 여기에는 두 개의 함축이 들어 있다. (1) ‘생명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서 영혼에 대한 표준적인 명칭이다. (2) 원리들은 데카르트의 정초적 인식 체계의 토대들이다. 영혼이 데카르트에게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1)로부터 데카르트의 원리가 그의 신체에 대한 설명에서 생리학의 존재적 기초일 것이라고 가정하는것은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2)로부터 생명의 원리가 데카르트의 생리학과 의학을 위한 인식론적 토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
아래의 세 개의 섹션에서 나는 (1)과 (2)의 의미에서 생명 원리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의 생명 원리가 실제로 생리학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토대일 수 있다고 생각할 근거들을 제시한다. 나는 이것들이 데카르트가 ‘생명 원리’라고 부르는 것을 사유하는 오도적인 방식들이라고 본다. 그것들이 어떻게 오도하는지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들을 해명해야 한다.
2.1. 생리학의 존재적 토대의 경우
데카르트가 ‘생명의 원리’를 가져오는 경우, 이것은 주로 ‘고대인들’이나 ‘강단의 사람들’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에게서생명은 영혼에 속한다. 그가 반박하는 입장은 영혼을 생명의 원천으로, 그리고 신체의 자기운동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간주한다. 이는 모든 생명 기능들을 궁극적으로 영혼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혼을 살아 잇는 신체의 존재론적 토대로 삼는다. 이 설명에서 생명에 관한 의존 관계는 위계적이며 일방향적이다. 살아 있는 신체들의 작용들은 영혼에 의존하는 반면, 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작용들로부터 독립적이다.
Des Chene이 지적하듯,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에서 영혼은 생명의 원리이다. 수아레스에게서 이것은 심지어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영혼의 이 기능을 전면 거부한다. 그는 물질적 신체 자체가 생명에 충분하기 때문에,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이란 불필요한 상정이라고 거듭 단언한다. (AT XI, p. 202; AT VI, p. 46; AT XI, p. 330; AT I, pp. 413–14) 특히 시사적인 것은 레기우스에게 보낸 편지로, 데카르트는 ‘영혼을 정신, 동물의 식물적 능력과 운동 능력을 종으로 하는 유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논리에 어긋난다’라고 쓴다. (1641년 5월, AT III, 371). 이는 그의 존재론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게 가용했던 것보다 훨씬 제한적인 영혼의 정의를 그에게 부여하기 때문인데, 그의 존재론은 오직 두 실체만을 허용한다. 데카르트에게 정신은 영혼과 동일하며, 물질과 전적으로 구별되어서, 이 정의에 따르면 정신은 유개념이어서 영혼은 사유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영혼은 어떠한 생명 정초적 역할도 맡을 수 없는데, 생명 정초가 사유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를 생동하게 하는 과제를 영혼으부터 박탈함으로써, 데카르트는 영혼을 가지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입장을유지하면서도 동물에게 인간 못지않게 생명을 귀속시킬 수 있게 된다.
데카르트가 자신을 위치시켰던 맥락, 즉 생명이 신체의 추동력으로서의 영혼을 필요로 한다는 맥락에서는, 영혼적인 것(psychic) 것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생리학이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에 대한 자체적인 대체물을 제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생명 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그러나 심혼적 요소를 더 데카르트적인 것으로 교체하면서(그가 "고대인들"의 "길에서 벗어난다"고 항변함에도 불구하고(CSM I, p. 328; AT XI, pp. 327–8)). T. S. 홀(Hall)이 논하듯,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설명들은 다른 이들이 앞서 제시한 영혼주의적 설명들의 입자론화된, 비영혼주의적 판본들이었다"(1970, p. 63). 이 독해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생명 원리는 (신체를 추동하는 생명 원리가 있다는 존재론적 함의와 함께) 수입되어, 단순히 데카르트의 존재론과 양립 가능한 과정으로 재해석되었을 것이다.
- See also Bitbol-Hespériès 1990; Hatfield 1992, p. 341; Des Chene 2001, p. 29; Aucante 2006, pp. 166–79, and Joly 2011, p. 123; more generally, Rozemond 1998; Ariew 1999. But cf. Lindeboom 1979, p. 69:“the feu sans lumière has nothing to do with the vegetative or the sensitive soul,” but“[i]n the chaleur of the heart which heats the blood, the old Aristotelian innate heat (calor innatus) is easily recognized”; if it’s not one thing, it’s another.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게 오직 특정한 신체들만이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즉 기관들을 갖추고 올바른 배열을 이룬 신체들이. 신체는 영혼과 독립적인 물질의 조직화(organization of matter)로 이루어지며, 영혼이 하는 일은 그 물질적 조직화의 잠재성을 현실화함으로써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생명 이해의 기본 구조는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반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입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대의 파라켈수스적 의학 이론은 모든 기관에 아르케이(archei)를 귀속시켰다. 각각의 아르케우스는 자신의 기관을 통제하고 (반)독립적이며, 서로 다른 기관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이 있다. 이 상호작용 역시 신체 내의 조직화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하위 아르케이들은 궁극적으로 "주인" 아르케우스, 즉 "내적 대통령, 관리자, 통치자"(반 헬몬트, Pagel 1982, p. 98에서 인용)에게 귀속된다.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기관들의 조직화는 유지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과 파라켈수스적 주인 아르케우스는 모두 부재한다. 문제는 그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카르트적 원리로 그것들을 대체하는가이다.
그가 그것들을 대체해야 한다면, 그리고 영혼이 금지되어 있다면,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존재론에서 생명 원리로 가능한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물질 안에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는 물질 세계가 기계론적으로—"물질 입자들의 형태, 크기, 위치, 운동"(CSM I, p. 279; AT VIIIa, p. 314) 이외에 아무것도 통해서가 아니라—작동한다는 것에 헌신한다. 그리고 그는 살아 있는 신체를 기계로 명시적으로 기술한다(AT VI, p. 56; AT XI, p. 120; AT XI, p. 226). 따라서 존재론적 생명 원리는 그 기계를 추동하는 메커니즘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정념론』에서 신체를 시계에 비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바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신체와 죽은 사람의 신체 사이의 차이는, 한편으로는 태엽이 감겨 있고 그것이 설계된 운동들에 대한 신체적 원리와 그 작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체 내에 담고 있는 시계 또는 여타의 자동 기계(즉 자기 운동하는 기계)와,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한 시계 또는 기계가 고장나서 그 운동의 원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사이의 차이와 꼭 같다(『정념론』 1/6; CSM I, pp. 329–30; AT XI, pp. 330–31).
유비는 명확해 보인다. 시계가 운동의 원리를 갖듯이, 살아 있는 신체는 생명의 원리를 갖는다. 후자는 신체에 대해 태엽이 시계에 대한 것과 같은 관계에 있다. 이 구절은 또한 데카르트가 여기서 생명을 자기운동과 동일시함을 명확히 하는데(예컨대 1642년 6월 레기우스에게 보낸 편지[AT III, p. 566]에서도 마찬가지로), 죽은 신체의 유비물이 운동 원리가 비활성화된 시계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관심을 두는 것이 자기운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존재론적 생명 원리는 살아 있는 신체라는 기계의 운동들을 추동하는 "용수철" 메커니즘일 것이다.
- 설령 생명의 존재론적 원리가 신체의 운동 원리라 하더라도, 자기운동을 데카르트에게 있어 생명의 일반화된 개념으로 취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인공 자동 기계(시계 같은)가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생명 일반 개념이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는 MacKenzie 1975; Ablondi 1998; Detlefsen 2016; Hutchins(이 원고, 2016)를 참조.
- [그럼 죽음과 질병의 관계는 뭘까?]
2.2. 생리학의 인식적 토대의 경우
데카르트적 생명 원리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체 안의 존재적 추동력을 의도한 것인 듯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인식론에서 원리들이 갖는 중요성은 무시하기 어렵고, 데카르트가 자신의 생리학을 위한 정초적 원리를 원했음을 시사하는 일정량의 문헌적 증거도 있다. 결국 생리학은 살아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생명의 인식론적 원리는 바로 살아 있는 것들에대한 앎을 정초할 것이다. 더욱이 데카르트의 생리학을 위계적 학문으로, 즉 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앎이 견고한 토대 위에구축된 것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쉽고도 자연스럽다. 이것이 아마도 비트볼-에스페리에스가 이 원리를 생명을 설명하는 근본 명제로 지칭할 때 염두에 두는 바일 것이다. 데카르트가 <원리>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유명하게 주장하듯이. ‘철학 전체는 나무와 같다. 뿌리는 형이상학이고, 줄기는 자연학이며, 줄기에서 뻗어나오는 가지들은 다른 모든 학문들로, 이것들은 세가지 주요한 것들, 의학, 역학, 도덕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
- 데틀레프슨(Detlefsen)은 다음과 같이 논한다. 데카르트에게 "살아 있는 신체로 간주되는 신체들의 부류를 분리할 방법이 없었다면, […] 그는 생명 과학들—그가 상당한 직업적 시간을 헌신했던 학문들—의 주제로 기능할 개체들을 식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철학자로서 그의 작업적 삶의 이 측면을 비정합적인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2016, p. 142). [Baldassarri와 비슷한 주장]
명확한 함의는 의학(이 말은 생리학도 포함한다)이 자연학의 위계적으로 고차원적인 파생물이라는 것이다. 이 비유로부터 우리는 의학과 생리학에 관한 앎이 자연학의 토대 위에 구축되기를, 마치 가지가 줄기의 특정 지점에서 점차 자라나듯이,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서문의 몇 쪽 앞에서 데카르트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 원리들을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앎의 나무 전체를 포괄하려는 교과서의 서문인 만큼, 여기서 ‘철학’이 형이상학 못지 않게 의학을 포함하는 것으로 의도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본 원리들은 앎이 그 위에 구축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 ‘다른 것들에 대한 앎은 [이 원리들에] 의존해야 하는 바, 원리들은 이 다른 사안들에 대한 앎 없이도 알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즉 위계적 설명에서 인식론적 의존 관계는 일방향적으로만 작동한다. 그리하여 의존 관계들은 위계를 반영한다. 위계적으로 고차원적인 앎은 정초적 원리들에 의존하며, 강조컨대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데카르트 자신의 인식론적 방법론에 관한 일반적 진술들만을 가지고도, 데카르트의 생리학 탐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데카르트는 인식론적으로 정초적인 원리를찾아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원리는 그의 자연학에서 취해져야 하며, 그 목적은 살아 있는 신체들을 그의 철학 체계의 인식론적 파악 안으로 들여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한 원리를 확보하면, 그는 아마도 기본적인 저차의 신체 기능들로부터 시작하여 중간적 기능들로, 그 다음 고차 기능들(아마도 예컨대 감각)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생리학적 설명을 위계적으로 구성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이 인식론적으로 위계적인 생리학 설명의 전제들로,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신체에 관한 앎은 언제나인식론적 토대로 환원된다. 데카르트 자신이 주장한 기준들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동물/인간 신체에 관한 훌륭하고 확고한 앎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메르센에게 "현재 내가 탐구하고 있는 바인, 확실한 논증에 기초한의학 체계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지 알게 될 때까지는 부디 건강을 돌보시오"(1630년 1월; CSMK, p. 17; AT I, p. 105)라고썼을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일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위계적 설명에서는, 데카르트의 위계적으로 고차적인 신체 기능들 중 일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불분명하다(실제로 때때로 그러하다) 하더라도 어쩌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설명들이 견고한 토대에서 도출된다는 점에서 그가 최소한 기본은 올바르게 갖추었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생리학이 더 근본적인 신체 계통들에 대한 확고하고 강력하며 명료한 설명들을, 그리고 고차 기능들에 대한 다소 취약하고 불분명한 기술들을 포함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독해에서 우리는 가장 확고한 설명이 근저 원리를 위해 유보되기를 기대해야 한다—결국, 생리학(과 의학)에 관한 앎에 신뢰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근저 원리이기 때문이다.
2.3. 토대로서 데카르트의 생명의 원리
우리는 존재적 토대가 되기 위해 생명 원리가 신체를 추동하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동력"이어야 한다는 것(그럼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적 생명 원리의 존재론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아울러 기계론적이고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것(그럼으로써 원리를 데카르트화하기 위해)을 확립했다. 또한 생리학의 인식론적 토대가 되기 위해, 데카르트의 생명 원리는 생리학 학문 전체에 관한 앎을 정초하기에 충분히 확고한, 그의 자연학에서 도출된(혹은 그것으로 환원 가능한) 설명이어야 할 것이다. 데카르트의 경우, 그 설명은 오직 그의 자연학의 궁극적 토대, 즉 연장으로 완전히 환원 가능할 때에만 충분히 확고할 것이다. 이는 미시 입자들의 형태, 크기, 운동이라는 입자 역학의 용어들로의 설명을 요구한다.
표면상으로 데카르트의 생명 원리에 대한 언급들은 이 모든 기준들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독해가 포착하는 것은 생명 원리에 관한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들과 그의 생리학 내에서 "원리"에 대한 실제 취급 방식을 구별하는 것이 유용한데, 전자는 후자를 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주장은,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들이 심장 열을 생리학의 인식론적·존재론적 토대로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제시하는 반면, 그의 실제 생리학적 설명은 어떠한 단일한 토대도 폐기한다는 것이다. 이 절에서 나는 일반적 주장들을 명확히 한 다음, 다음 절에서 심장 열이 데카르트의 신체론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분석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데카르트가 생명 원리를 말할 때, 그가 염두에 두는 것이 심장 열—혹은 기억할 만한 표현을 빌리면 심장 안의 "빛 없는 불"(AT VI, p. 46)—이라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는 때로 혈액을 원리로 언급하기도 하고, 한 번은 신체 전체를 언급하기도 하지만(§4.3 참조), 학계는 이 언급들이 궁극적으로 심장 열로 환원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론』에서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기계[신체]가 그 심장 안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의 열에 의해 작동되는 혈액과 정기 외에 다른 어떤 […] 운동과 생명의 원리도 갖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CSM I, p. 108; AT XI, p. 202).’
여기서 데카르트의 암묵적 표적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생명 개념이다. 생명적 영혼들이 바로 데카르트가 신체의 물리적 메커니즘 위에 추가되는 생명 원리들을 언급할 때 가리키는 것이며(여기서 데카르트의 "정기들"은 명시적으로 물질적이다), 그의 요점은 우리가 생명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신체의 물질 안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위에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을 상정하는 것은 잉여적 단계라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면, 살아 있는 신체에 특유한 모든 것—그것의"운동과 생명"—이 단일한 근저 원리를 갖는 것처럼 들린다. 즉 심장 안의 불의 열에 의해 작동되는 혈액과 정기. 그리고 혈액과 정기의 작동 자체가 불의 열에 의존하므로, 원리를 심장 안의 열 자체로 더 단순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데카르트는 생명 원리에 관한 자신의 일반적 주장들에서 이 기술과 상당히 일관적이다. 훨씬 후기 텍스트인 『정념론』은 그의 생리학의 요약으로 시작한다. 제7조는 "신체 부분들과 그 기능들에 관한 간략한 설명"(1/7; CSM I, p. 330; AT XI, p. 331)이라는 제목으로 소화에서 순환, 감각에 이르는 살아 있는 신체들의 주요 기능들을 다룬다. 다음 조항은 "이 모든 기능들의 근저에 있는 원리"를 다루는데, 그 원리는 심장 열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심장에는 끊임없는 열이 있는데, 이것은 정맥의 혈액이 거기서 유지시키는 일종의 불이다. 이 불이 우리 사지의 모든 운동들의 근저에 있는 신체적 원리이다(『정념론』 1/8; CSM I, p. 331; AT XI, p. 333).
『인간론』보다 훨씬 명시적으로, 『정념론』은 신체의 존재론적 토대로 기능하는 원리가 있으며 그 원리가 심장 열임을 시사한다. 데카르트가 여기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심장 열은 "우리 사지의 모든 운동들"의 근저에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신체를 추동한다—Des Chene이 잘 표현하듯, "[혈액의] 순환에서 동력은 심장의 열이다"(2001, p. 21). 데카르트는 심장 열을"신체적"(그리고 그럼으로써 물질적, 함의상 기계론적)이라 기술하며, 따라서 비영혼적이라 한다. 생명 원리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 주장들의 힘에 의거하면, 그것이 실제로 생리학의 존재론적 토대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상의 원리의 인식론적 측면은 『인간 신체의 기술』(『인간론』의 많은 부분을 재정리하고 갱신한 후기 텍스트)에서 드러난다. 서문은 명시적으로 이 책을 인식론적 맥락에 놓는다. 서문은 질병의 치유와 예방, 그리고 노화 과정을 늦추기 위한 의학적 앎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이어서 의학적 앎이 생리학적 앎에 의존함을 주장한다. 의학은 "우리가 우리 신체의 본성을 알기에 충분히 연구했더라면" 더 나은 임상적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인간 신체의 기술』, p. 170; AT XI, pp. 223–24; 번역 수정). 그는 계속하여 의학적 앎의 주된 장애물이 생명 기능들을 영혼에 오귀속한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이는 즉시 심장 열이 살아 있는 신체를 추동하는 존재론적 원리라는, 우리가 『인간론』과 『정념론』에서 이미 본 것과 유사한 주장으로 이어진다(AT XI, p. 226). 심장 박동, 순환, 호흡, 영양에 대한 상세한 설명 이후, 데카르트는 존재론적인 것에서 인식론적인 것으로의 이행을 명시적으로 진술한다.
심장 운동의 진정한 원인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여, 그것 없이는 우리는 의학 이론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동물 안의 다른 모든 기능들이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인간 신체의 기술』, p. 182; AT XI, p. 245).
그는 의학과 생리학에 관한 모든 앎이 "심장 운동의 진정한 원인"—다시 말해 앞선 설명을 고려하면, 심장 열—에 관한 앎에 의존한다는 것을 상당히 명확하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확실히 생리학의 인식론적 토대처럼 들린다. 이 구절은 또한 원리의 존재론적 측면과 인식론적 측면 사이의 관계에 관해 무언가를 알려준다. 즉 심장 열에 관한 앎 없이는 의학과 생리학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주장하는데, 그것은 신체의 존재론적 구성이 그 모든 기능들이 그것들을 추동하는 존재론적 원리로서의 심장 열에 의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외재적 목적에 관해서는 Gaukroger 2002를, "기능"과 "직무" 개념에 관해서는 Des Chene 2001을, 건강에 관해서는Des Chene 2002와 Shapiro 2003a를, 기능에 관해서는 Brown 2011을, usus와 기능에 관해서는 Distelzweig 2015를 참조.
- Bitbol-Hespériès 1990, ch. 3 gives a thorough overview of cardiac heat as the principle of life. See also, e.g., Aucante 2006, p. 164; Des Chene 2001, pp. 3, 26; Fuchs 2001, p. 131; Gaukroger 2008, pp. 10–11; Shapiro 2003b, pp. 240; 2011, pp. 272–3, 282, and Smith 2007, p. 624 for evidence of the consensus that cardiac heat is the principle of life.
3. 심장의 열에 대한 설명
3.1. 심장의 열의 원천
심장 열이 데카르트의 생명 원리와 폭넓게 동일시되므로(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우리는 그것이 원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전에 데카르트의 설명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심장 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데카르트적 생명 원리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심장 열은 데카르트가 그토록 강하게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고대인들"의 이론들에서 이미 생명 원리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생리학을 고대인들의 것과 구별하려면, 심장 열의 원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야 할 것이고, 그 설명은 입자 역학으로, 궁극적으로는 순수 연장 자체로 환원 가능함으로써 영혼적 설명과 차별화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데 셴(Des Chene 2001, p. 27)이 지적하듯, 데카르트의 『세계론』과 『철학의 원리』에서의 열을 입자 운동으로 보는 설명을 고려하면 열은 이미 데카르트에게 기계론적이다. 열 자체가 기계론적이라면, 연장선상에서 심장 열도 기계론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열만을 지시하는 것이 기계론적 설명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다른 곳에서 열에 대한 물질적 설명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심장 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열 자체에서 끝날 수 없다. 인과적 이야기에는 또 다른 층위가 있는데, 바로 심장이라는 측면이다. 열 자체의 본성은 여기서 관련된 물음이 아니다. 관련된 것은 무엇이 특별히 심장에서 열을 일으키는가이다.
3.2. 유비들
생리학과 의학에 관한 데카르트의 완성된 저작 전체에서, 그는 심장의 열을 오로지 다양한 암시와 유비들을 통해서만 설명한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불이다. 그리하여 호흡은 "[심장 안의] 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인간론』, p. 102; AT XI, p. 124)으로 넘겨 기술되고, 『정념론』에 따르면 "우리 심장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 우리는 죽는다"(2, p. 122; CSM I, pp. 370–71; AT XI, p. 418). 심장 열을 일종의 불에 귀속시키는 동일한 일반적 방식은 『인간론』(AT XI, p. 202)과 『정념론』(1, p. 8; 2, p. 123)에서 다시 나타나며, 『인간 신체의 기술』(AT XI, pp. 236, 237, 244, 280–82)과 서신(AT IV, p. 407)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론』(AT XI, p. 123)과 『방법서설』에 포함된 그 요약에서 데카르트는 불의 암시를 약간 더 전개한다. 후자에서 그는다음과 같이 쓴다.
신은 처음에 이 신체 안에 식물적 또는 감각적 영혼으로 기능할 어떤 […] 것도 두지 않았고, 오히려 […] 그 심장 안에 빛 없는 불들 중 하나를 점화했다(CSM I, p. 134; AT VI, p. 46).
빛 없는 불이라는 발상은 그 자체로 기묘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맥락상 의미가 있다. 『인간론』과 함께 출판될 예정이었던『세계론』의 앞선 부분인 『빛에 관한 논고』에서, 데카르트는 나무를 태우는 화염의 용어로 불을 설명한다(AT X, pp. 7–10). 거기서 불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미시적 물체들이 나무를 구성하는 입자들을 분해함으로써 생성된다. 데카르트는 심장에서 열을 생성하는 불을 화염에서 열을 생성하는 불과 동일시하되, 단지 빛이 없는 것으로 하고자 한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빛 없는 불들을 발효와 연관시키며, 심장 열의 원인과 발효의 비교가 나머지 유비들을 이룬다. 『방법서설』에서 그는 심장 안의 불이 "건조되기 전에 저장된 건초를 가열하는 불, 또는 짓이긴 포도에서 나온 새 포도주를 발효시키도록 두었을 때 들끓게 하는 불과 다르지 않다"(CSM I, p. 134; AT VI, p. 46)고 주장한다. 『인간 신체의 기술』에서 비교는 효모(levain)에 이루어지고(AT XI, p. 228; AT XI, p. 282), 플렘피우스(Plempius)와의 서신에서는 효모(AT I, p. 523)와 발효일반(AT I, p. 523, 531; AT II, p. 69)이 모두 언급된다. "건조되기 전에 저장된 건초를 가열하는 불"에 대한 데카르트의 언급은특히 관련이 있는데, 『철학의 원리』에서 제시된 그의 발효 설명이 그 주제를 오로지 습한 건초의 자가 발열을 통해서만 다루기 때문이다.
『철학의 원리』 제4부 제92조는 "저장된 건초처럼 뜨거워지지만 빛나지[lucent] 않는 것들에 관하여"(4/92; CSM I, p. 273; AT VIIIa, p. 256)라는 제목인데, 여기서의 맥락은 제80조에서 도입된 불의 본성과 생성이다. 주장은 건초 조각들 안에서 수액의 운동이 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풀잎에는 수액이 보통 흐르는 통로들이 있으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풀이 건조되면서 그 통로들을 통해 증발할 것이다. 그러나 풀잎이 건조되면서 그 부분들이 수축하고, 특정 조건 하에서 통로들은 수액이 증발하기 전에 스스로 봉인될 만큼 충분히 수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액은 점점 더 작아지는 통로들을 통해 점점 더빠르게 강제로 밀려난다. 이 운동이 주변 물질을 작동시켜 열을 일으킨다. 이것이 발효의 한 형태이며, 모든 발효는 동일한기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즉 비교적 큰 물질 입자들이 정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도록 강제된다(AT VIIIa, p. 256).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발효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을 갖는다—적어도 건조되는 건초의 경우에는. 그는 또한 심장 열이 일종의 발효에 의해 야기된다고(혹은 그 원인이 발효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초 모델이 심장 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심장에는 건초가 없고—그와 명백히 유사한 것도 없으며—건조과정도 없다. 습한 건초의 발효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좁은 범위의 상황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심장 안의 상황과 매우 다른 상황이다. 그리하여 건초와의 비교는 그 자체로 두 과정 사이의 매우 약한 유사성 이상을 보여줄 수 없다. 모델을 심장에 적용하려면 건초의 발효를 야기하는 기계론적 원인들이 심장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상술이필요할 것이다.
3.3. 혈액 배출
추가적인 상술은 『인간론』, 『방법서설』, 『정념론』에서의 심장 열에 관한 논의들에서 제공되지 않으며, 『인간 신체의 기술』 제2부("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하여"(『인간 신체의 기술』, p. 172; AT XI, p. 228))를 이루는 확장된 논의에서도찾을 수 없다. 그것은 배아학을 다루는 『인간 신체의 기술』의 한 절에서, 다소 불연속적으로, 나타난다. 거기서 데카르트는 혈액 배출을 통한 심장 열의 원인에 대한 간결하지만 완전한 설명을 제공한다.
나는 심장 안에서 혈액 입자들의 작동 외의 다른 어떤 불이나 열도 알지 못하며, 이 불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원인도 알지 못하는데, 오로지 다음의 것만은 제외하고: 이완기에 대부분의 혈액이 심장을 떠날 때, 거기 남아 있는 입자들은 살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그것들은 그 주위가 오직 제1원소의 물질만으로 둘러싸인 방식으로 배열된 기공들과 그런 방식으로 작동되는 섬유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수축기에 이 기공들은 심장이 길어지면서 형태를 바꾸는데, 이것이 마치 효모로 기능하도록 거기 남아 있던 혈액 입자들을 큰 속도로 거기서 떠나게 하고, 이런 방식으로 심장으로 들어오는 새 혈액 안으로 쉽게들어가서 그것들의 입자들을 서로에서 분리시키며, 이렇게 분리됨으로써 불의 형태를 획득한다(『인간 신체의 기술』, p. 203; AT XI, pp. 281–2).
이것은 데카르트가 그 유비들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건초의 발효에 대한 설명과 상당히 명확한 유사성을 갖는다. 심장 안에 남아 있는 혈액은 풀잎 안의 수액에 해당한다. 그것은 심장 살의 기공들 속으로 가라앉는데, 이 기공들이 풀 안의 통로들의 역할을 한다. 수축기(데카르트에게 심장 박동의 수동적 국면)에 심장은 길어진 형태로 이완되고, 이로 인해 기공들이 측면에서 압축된다. 기공들의 이 압축은 건조되는 건초에서 통로들의 수축에 해당하며, 혈액 입자들을 심장 벽의 살에서 밀어내어, 동시에 심장으로 들어오는 새 혈액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가속된 혈액 입자들의 작동은 차례로 새 혈액의입자들을 작동시켜 그것들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열을 생성한다. 이것은 거시적 수준에서 혈액이 팽창하게 하고, 심장은 이완기로 들어가며, 전체 과정이 반복된다. [이완기: 혈액 대부분이 심장 밖으로 나가고, 일부 입자들이 심장 벽의 기공 속에남음. 수축기: 심장이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기공들이 옆으로 압축됨. 기공에 끼여 있던 혈액 입자들이 효모처럼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새로 들어오는 혈액 속으로 돌진. 이 충격으로 새 혈액 입자들이 서로 분리되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열 발생. 열로 인해 혈액이 팽창. 심장이 다시 이완기로. 같은 과정의 반복.]
이 구절은 건초의 발효에 대한 설명을 심장 열의 생성으로 번역하는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그의 완성된 저작들에서, 서신에서, 그리고 『인간 신체의 기술』의 심장 운동에 대한 논의 자체에서 사용하는 유비들이 하지 않는 것—즉 특별히 심장에서 열의 생성을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수행한다.
4. 상호의존성과 존재론적 토대에 반하는 논거
4.1. 상호의존성과 신체의 동력
데카르트의 심장 열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우리는 그의 생리학적 설명에서 심장의 열이 신체를 "추동한다"고 말할수 있는지를(그리하여 그것이 살아 있는 신체의 운동의 존재론적 원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나의 독해에서, 데카르트의 생리학의 주요 계통들이 위계적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어떤 한 계통도 다른것보다 더 근본적일 수 없으므로——데카르트적 신체를 추동하는 단일한 원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데카르트가 우리는 "자동 기계들처럼 움직이며, 아무도 열의 힘이 그것들의 운동을 일으키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 1637년 10월 3일; CSMK, p. 63; AT I, p. 414)고 쓸 때, 그는 신체를 추동하는 것이 열임을상당히 명확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장 열이 신체의 동력이라면, 그것은 혈액을 순환시키고 동물 정기를 생성하기 때문에신체의 운동들을 추동할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인간 신체의 기술』 서문에서 신체의 작동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신체가] 심장 안에 갖는 열은 그것의 모든 운동들의 거대한 용수철 또는 원리와 같고, […] 정맥들은 신체의 모든 부분들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전도하는 관들로, 거기서 혈액은 [심장의] 열을 연료로 공급한다 […]. 그리고 동맥들은 또 다른 한 묶음의 관들로, 그것들을 통해 심장에서 가열되고 희박해진 혈액이 거기서 신체의 다른 모든 부분들로 이동하여, 그것들을 유지하는 열과 물질을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이 혈액의 가장 작동되고 가장 활성화된 부분들이 뇌로 운반되어 […], "동물 정기"라고 불리는 공기 또는 매우 미세한 바람을 이룬다. 이것들은 뇌를 팽창시켜, 그것이 […] 공통 감각, 상상력, 기억의 기관으로 […] [기능할] 수 있게 한다. 그 다음 […] 이 동일한 정기들이 뇌로부터 신경들을 통해 모든 근육들로 흘러, 이 신경들이외부 감각들의 기관들로 기능하게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근육들을 팽창시켜 모든 신체 부분들에 운동을 부여한다(『인간신체의 기술』, p. 172; AT XI, pp. 226–7).
심장 열은 혈액을 희박하게 하고 가열하며, 이것이 혈액을 동맥들을 통해 밀어냄으로써 신체 전체에 열과 영양이 공급된다. 심장 열은 또한 가열과 희박화 과정에서 방출되는 혈액의 가장 작고 가장 활성화된 입자들의 형태로 동물 정기를 생성한다. 정기들 역시 혈액의 희박화에 의해 심장에서 밀려나 신경계를 통해 이동함으로써, 뇌와 감각 기능들에 동력을 공급하고 "모든 신체 부분들에 운동을 부여한다."
이 기술에 근거하면, 신체 안의 인과적 의존 관계들은 실제로 일방향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화와 근육 운동 같은기능들은 각각 순환계와 신경계에 의존하고, 이 둘은 모두 심장 열에(그리고 궁극적으로 심장 열을 추동하는 혈액 배출에) 의존한다. 이 설명에서 심장 열은 위계의 바닥에 자리하기 때문에 신체의 동력이 된다. 즉 신체 안의 모든 의존 관계들이 궁극적으로 그곳에서 끝난다면, 심장 열이 동력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무언가의 배후에 있는 원리라고 단순히 진술하는 것이 그 자체로는—적어도 데카르트주의자에게는—그것을 그 원리로 만들지 않는다. 그 입장은 실증되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생명 원리의 경우,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신체의 운동들 배후의 추동력을 제공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생명 원리에 관한 앎이 생리학 학문의 인식론적 토대로사용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데카르트에게 열 자체는 운동에 다름 아니다(AT XI, p. 10). 신체의 운동들을 추동하는 것이 열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신체 안의) 열을 야기하는 것이 (신체 안의)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체 안의 운동이 신체 안의 운동에 의해 야기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즉 순환논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열 자체는 신체의 존재론적 토대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는 열의 배후에 있는 원인이 필요하다. 혈액 배출 설명이 그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심장 열이 신체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살펴봐야 하는 것은 혈액 배출 설명이다. 달리 말하면, 심장 열은 추가적인 의존 관계를 갖는다. 즉 혈액 배출. 신체 안의 의존 관계들이 어디서, 과연 끝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혈액 배출의 의존 관계들을 검토해야 한다.
혈액 배출 설명에 따르면, 심장 열은 심장 벽에서 입자들이 "대정맥을 통해 [오른쪽] 심실로, 그리고 폐정맥을 통해 왼쪽 심실로"(『인간 신체의 기술』, p. 174; AT XI, p. 231) 동시에 들어오는 더 차갑고 희박화되지 않은 혈액 속으로 배출됨으로써야기된다. 이것이 혈액의 가열과 희박화를 야기하는 것으로, 이 가열과 희박화가 순환과 동물 정기 생성 모두를(그리고 결과적으로 데카르트가 『인간 신체의 기술』 서문에서 기술하는 신체 기능의 전체 과정을) 추동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위의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혈액 배출을 통한 심장 열의 생성은 다음 활동들에 의존한다. (a) 심실들로의 "신선한" 혈액의 추가, 그리고 (b) 심장 벽에서의 혈액 입자들의 배출. (a)를 위해 신체는 (a.1) 혈액과 (a.2) 그것을 심장으로 전달하는 수단(즉 순환)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b)를 위해 신체는 (b.1) 심장 벽 안의 혈액과 (b.2) 그것을 충분한 속도로 배출하는 수단 모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즉각적으로, 혈액 배출이 그 이상의 무언가에 의존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체 안의 의존 관계들이 혈액 배출에서 끝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b)의 의존 관계들을 따라가면, (b.2)가 심장 연장에 의존함을 알 수 있다. 심장 벽의 기공들이 "심장이 길어짐으로써 형태를바꾸며", 이것이 "혈액 입자들을 […] 큰 속도로 거기서 떠나게 한다"(『인간 신체의 기술』, p. 203; AT XI, pp. 281–2). 심장연장 자체는 심장 박동의 활성 국면에 이은 심장의 수축에 의해 야기된다(AT XI, p. 232). 따라서 혈액 배출은 (b)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b)는 (b.2)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며, (b.2)는 심장 연장에 의존하는 반면, 심장 연장은 심장 수축에 의해 야기되고, 심장 수축 자체는 심장 팽창의 결과이다. 그리고 심장 팽창은 혈액 배출에 의존한다. 이 과정 안의 어떤 주어진 활동—혈액 배출, 심장 연장, 심장 수축 등—도 이 과정 안의 다른 활동들에 의존한다. 즉 과정 전체가 순환적이며, 그 안의 활동들은상호의존적이다. 마찬가지로, 소량의 혈액이 심장 벽 안에 남아 있는 것(b.1)은 오직 이전 심장 박동의 활성 국면의 결과이며(AT XI, p. 231), 활성 국면 자체가 (b.1)에 부분적으로 의존한다.
의존 관계의 이야기는 (a)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심실들로의 신선한 혈액의 추가는 심장에서 이전에 내보내진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가져오기 위해 전체 순환계(a.2)를 부분적으로 필요로 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데카르트에게 순환이심장 박동에 의존하고, 심장 박동은 혈액의 팽창에 의존하며, 혈액의 팽창은 심장 열에 의존하고, 심장 열은 혈액 배출에 의존하며, 혈액 배출은 순환에 의존하는 식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순환과 심장 열은(혈액 배출, 심장 팽창과 수축 등과 함께) 상호의존적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설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심장 열의 의존 관계들은 적어도 두 가지 더많은 신체 기능들—소화와 호흡—을 끌어들인다. 순환을 통한 신선한 혈액의 추가는 혈액의 공급(a.1)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신체 안에서의 혈액 생성에 의존한다.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혈액 생성은 소화에 의존한다(AT XI, pp. 122, 227). 그런데소화는 그것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운동과 물질을 공급하기 위한 따뜻한 혈액의 순환에 의존한다(AT XI, p. 121). 순환과 심장 열이 없으면 소화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소화가 없으면 순환과 심장 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화, 순환, 심장 열은 모두 상호의존적이다.
또한 정맥 안의 재순환하는 혈액에서 심장으로 재진입하는 신선한 혈액을 공급받기 위해, 데카르트의 생리학은 호흡을 필요로 한다.
호흡 공기에 의해 [폐는] 심장의 오른쪽 심실에서 오는 혈액이 왼쪽 심실로 들어가기 전에 그것을 농축하고 조절한다. 이것이 없으면 혈액은 너무 희박하고 너무 미세하여 그것이 거기서 만나는 불을 연료로 공급하는 데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인간 신체의 기술』, p. 177; AT XI, p. 236).
호흡이 없으면 심장 열의 생성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심장 열은 호흡에 의존한다. 동시에 폐로의 혈액 흐름과, 따뜻한 혈액이 폐에 공급하는 운동 없이는 호흡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호흡, 순환, 심장 열, 소화는 모두 상호의존적이다. 각각은 다른것들에 의존하며, 어느 특정한 하나의 부재는 나머지 각각 및 모두의 작동을 막을 것이다.
신체 기능들의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면, 심장 열이 살아 있는 신체의 근저에 있는 존재론적 원리—그것을 추동하는동력—라는 데카르트 생리학의 독해는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이 순환의 어떤 지점에서도 멈추어 그 특정 단계를 "동력"이라고 이름 붙일 이유가 없다. 신체 안에 운동의 단일한 발원자는 없다. 생리학적 제1 원동자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과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없다. 혈액 배출 없이는 심장 열이 있을 수 없고, 신선한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오고 심실 벽에서 혈액 입자들이 방출됨 없이는 혈액 배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혈액 입자 방출은 심장 연장을 필요로 하고, 심장 연장은심장 수축을 필요로 하며, 심장 수축은 심장 팽창을 필요로 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이것들 중 어떤 것도 소화에 의존하는 혈액 공급 없이는, 혹은 호흡의 개입 없이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다. 의존 관계들이 끝나는 지점은 없다. 대신 그것들은 이 모든신체 기능들 전체에 걸쳐 영속적인 순환 속에 계속된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심장 열 취급에서의 순환성(열에 의해 야기되는 운동이지만, 운동에 의해 야기되는 열)은 악순환이 아니라 선순환인데, 다만 관련된 기능들의 상호의존성의 결과로서만 그러하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생리학은 위계적일 수 없고단일한 근저 원리에 의해 궁극적으로 추동될 수 없다. 데카르트적 신체를 추동하는 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단일한 기능일 수없다. 오히려 상호의존적 기능들의 총체 전체가 신체를 추동하는 것이어야 한다. §2.1에서 제기된 물음—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또는 파라켈수스적 주인 아르케우스)을 자신의 존재론과 양립 가능한 생명 원리로 대체하는가—에 대한답은 따라서 "아니오"이다. 그는 신체 부분들의 조직화를 유지하고, 그 조직화로 하여금 모든 작업을 수행하게 한다. 그는근저 원리를 전면 폐기한다.
4.2. 상호의존성과 발생
여기서의 논증에 대한 잠재적 반론은, 심장 열이 생명의 근저 원리로 파악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신체를지속적으로 추동하는 동력으로서가 아니라, 신체의 발달적 기원점으로서. 『인간 신체의 기술』에서의 데카르트의 발생 설명에서, 심장은 배아 안에서 발달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기관이다(AT XI, p. 254). 심장이 "종자의 혼합물"의 발효에 의해 생성된 열을 통해 발달하고(『인간 신체의 기술』, p. 187; AT XI, p. 254), 데카르트가 "이완기의 이 운동은 처음부터 열에 의해, 즉 불의 작용에 의해[이 경우, 심장이 그로부터 발달하는 발효하는 종자의 '불'] 야기되어 왔다"(『인간 신체의 기술』, p. 202; AT XI, pp. 280–81)고 주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따뜻한 심장을 신체 안 생명의 제1 원리 즉 출발 항으로 보는 상당히명확한 논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배아 안에서의 심장의 가장 이른 발생에서조차, 의존 관계들은 일방향적으로만 진행하지 않는다. 브라운은 데카르트의 설명에서 배아의 발달이 관련된 과정들의 상호의존성을 어떻게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준다. "뇌의 형성은 심장의 지속을 위해 필요하고, 심장의 형성은 뇌의 형성을 위한 필요 전제 조건이다"(Brown 2011, p. 86). 발생의 과정들이 선순환적 상호의존의 원을 이루기 때문에—신체의 지속적 작동을 유지하는 신체 계통들이 그러하듯이—배아 안에서 발달하는 따뜻한 심장은 신체 안에서의 첫 번째 자리를 발생의 다른 상호의존적 과정들과 공유해야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신체의 발생에서도 단일한 근저 생명 원리는 있을 수 없다.
4.3. 상호의존성과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들
그의 일반적 주장들에서조차 데카르트는 항상 단일한 원리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가 『인간론』에서 "운동과 생명의 원리"를 거론할 때, 그는 먼저 그것들을 인간-기계의 "혈액과 그것의 정기들"과 동일시하고, 이어서 혈액과 정기들이 "심장 안에서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불의 열에 의해 작동된다"고 말한다(CSM I, p. 108; AT XI, p. 202). 마찬가지로, 프로몽두스를 위해 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동물들의 영혼은 그것들의 혈액에 다름 아니며, 그 혈액은 심장의 온기에 의해 정기들로 전환된다"(1637년 10월 3일; CSMK, pp. 62–3; AT I, p. 414)고 주장한다. 이 두 구절에서 환기되는 것은 심장 열만 이상의 무언가이지만, 데카르트가 여기서 혈액과 정기들의 근저에 있는 원리를 심장의 열로 본다고 충분히 논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실제로 자신의 생리학이 상호의존성에 기초하여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다른구절들이 있다. 플렘피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심장 안에서의 혈액의 희박화를 "[심장의] 전체 구조(fabrica), 그안의 열, 그리고 혈액 자체의 본성"에 귀속시키는데, 이것들 모두가 "이 효과에 기여한다[conspirant]"(1638년 2월 15일; CSMK, p. 83; AT I, p. 529; 번역 수정). §3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혈액이 심장에서 배출되도록 야기하는 것은 혈액의 희박화이다. 또한 정기들을 생성하는 것도 혈액 희박화이다. 그리고 여기서 데카르트는 그것의 의존 관계들이 심장 열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더 근본적이지 않은 여러 공모하는 요인들의 산물임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더욱 시사적으로, 레기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인간들 안의 식물적 능력은 신체 부분들의 특정한 배열[constitutio]에 다름 아니다(레기우스에게, 1641년 5월; CSMK, p. 182; AT III, p. 372).
그는 신체의 동력을 단일한 근저 원리가 아니라 특정한 배열 안의 부분들의 총체로 본다. 이 논문의 분석은 우리가 이 부분들의 배열을 상호의존적 기능들의 원환으로 생각할 것을 시사한다. 매우 유사한 맥락에서, 『정념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죽음은 결코 영혼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요 부분들 중 하나가 쇠퇴하기 때문에만 일어난다[강조는나의 것](『정념론』 1/6; CSM I, p. 329; AT XI, p. 330).
신체가 죽을 때, 그것은 어떤 "주요 부분들"의 집단 중 어느 하나의 붕괴 때문이다. 데카르트 자신은 어떤 부분들을 주요한것으로 보는지를 한정하지 않지만, §4.1의 독해에 비추어 보면, 그것들은 상호의존적인 부분들 또는 기능들이어야 한다. 하나가 작동을 멈추면 신체 전체가 작동을 멈추는 것은 정확히 상호의존적 기능들이다. 각 부분이 다른 모든 것들에 의존하기때문에, 주요 부분들 중 어느 것이 쇠퇴해도 죽음이 일어난다. 데카르트는 생사의 책임을 오로지 심장 열의 손에만 두고 있지 않음이 상당히 명확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심혼적 생명 원리에 대한 자신의 대안으로 심장 열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신체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주요 부분들의 전체 총체에 둔다.
5. 인식론적 토대에 반하는 논거
생리학이 위계적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단일한 근저 존재론적 원리를 가질 수 없다.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들이 생리학 학문의 인식론적 원리를 존재론적 원리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2.3), 그의 생리학이 단일한 근저 인식론적 원리도 갖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생리학과 의학의 학문들을 정초하는 단일한 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논거가 있다.
심장 열이 생리학에 관한 앎이 그 위에 구축되는 원리라면, 데카르트의 생리학 저작들에서 그것에 대한 그의 취급 방식은 현저히 이상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 심장 안에서의 열의 생성에 못지않은 주의를 심장의 "이첨판"이나폐정맥과 폐동맥의 적절한 명칭에 할애한다. 예컨대 영양 메커니즘에 할당된 세부의 양과 심장 열의 원인에 주어진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3.1에서) 상기하면, 그의 완성된 저작 전체에서 데카르트는 심장 열의 생성을 오로지 유비와 암시들을 통해서만 다룬다. 이 유비들은 모호하고 불완전하며, 데카르트의 해당 주제에 관한 다양한 저작들 전반에 걸쳐 마치엘리베이터 피치의 교환 가능한 수사들처럼("생명 원리는 효모와 습한 건초의 만남과 같다") 변경되고 혼합되며 재활용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단지 어떤 생리학적 현상에 불과하다면, 메커니즘에 관한 구체성의 결여는 인식론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데 셴이 "개념 증명"(2001, p. 17)이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즉 이런 종류의 것들이 이런 종류의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러나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발효되는 포도주가 거품을 내거나 건조되는 건초가 열을 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데카르트에게 학문의 정초적 원리로 기능하기에 너무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비들은 열의 생성과비등이 물질적이고 비심혼적인 과정일 수 있음을 시사하지만, 더 이상의 상술 없이는 정초적 원리로서 불충분하다. §2.2에서 확립된 바와 같이, 인식론적 토대는 자연학의 원리들로 환원되는 잘 상술된 설명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유비들만으로는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데카르트에게 필요한 것은 발효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혹은 그와 유사한 것이) 심장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이다.
그는 그러한 설명을 갖고 있다. 혈액 배출 설명이 그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그의 일반 생리학의 어디에서도 그 설명을심장 열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혈액 배출 설명은 『인간 신체의 기술』 제5부에 제시된다. 『인간 신체의 기술』은 데카르트가 생애 마지막 몇 년에 걸쳐 작업한 미완성 원고이다(1647년과 1648년 사이에 집필되었다). 그것은 다섯 개의별개 부분으로 나뉘어, 처음 세 부분은 각각 서론, 심장 박동과 순환, 영양을 다루는 반면, 나머지 두 부분은 배아 발생과 배아 발달을 다룬다. 1648년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배아학이 자신의 작업에 가장 필요하다고 기술하지만, 관련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불평한다(AT V, p. 112). 그가 마침내 내놓은 초고는 유명하게도 허술하다. 1664년 판(최초의, 사후 출판)에서 데카르트의 편집자 클레르슬리에는 『인간 신체의 기술』의 제4부와 제5부를 "동물의 형성이 다루어지는여담"(AT XI, p. 252)이라는 제목 아래 별도로 분리해 놓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오직 이 맥락에서만—데카르트가 혈액 배출 설명을 사용한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생리학 학문을 마침내 정초하는 확고한 설명으로 의도된 것이었다면, 그것을 배아학의 잠정적 논의에relegation하는 것은 이상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것은 신체의 기능과 그것의 인식론적 가치를 정확히 다루는 『인간 신체의기술』의 처음 세 부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2.1 참조). 심장 박동을 설명할 때, 『인간 신체의 기술』은 §3.2에서 다룬 모호한 암시와 유비들만을 사용한다. 또한 혈액 배출 설명이 늦어도 1648년에 작성되었으므로, 1649년 말 출판 전에『정념론』의 생명 원리와 심장 운동에 관한 논의에 삽입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것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을 수 없다. 『정념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심장 열이 "일종의 불"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뿐이다(CSM I, p. 331; AT XI, p. 333). 혈액 배출이 그의 생리학의 근간을 마침내 기계론화한 설명이었다면, 데카르트가 그것을 자신의 최신작—그가 출판한 생리학에 대한 가장 철저한 논고이기도 한 저작—에 포함하기를 열망했을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할 수있다.
심장 열을 데카르트 생리학의 정초적 원리로 취한다면, 그가 심장 안에서의 열의 생성을 다루는 데 있어 현저히 태평한 접근방식을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심장 열이 여러 생리학적 현상들 중 하나에 불과하고, 순환, 호흡, 영양보다 더근본적이지 않다면, 그것에 대한 그의 취급 방식은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여러 현상들 중 하나에 대해서는 개념 증명 설명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더 잘 상술된 설명은, 문제의 현상에 중추적인 것이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다면, 모호한 원고에 묻혀있어도 무방하다.
『인간 신체의 기술』의 서론은 "심장 운동의 진정한 원인"을 알지 못하면 "의학 이론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인간신체의 기술』, p. 182; AT XI, p. 245)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원인을 심장 열로 취하는 것은 명백히 오류이다. 우리는 여전히심장 운동의 진정한 원인을 알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원인은 정확히 데카르트가 『인간 신체의 기술』의 이어지는 절들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즉 신체의 상호의존적 "주요 부분들" 전체의 생리학.
6. 결론
데카르트는 "생명 원리"에, 혹은 신체의 작동들의 근저에 있는 원리에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이 원리는 심장 열인 것으로 보인다. 이 언급들이 데카르트 생리학의 존재론적 토대—존재론적 토대란 신체를 "추동하는" "동력"이거나 신체 안의 모든 의존 관계들이 끝나는 지점이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취할 좋은 이유들이 있다. 또한 더 나아가 데카르트의 "생명 원리"를 인식론적 토대—그 위에 그의 생리학에 관한 모든 앎이 정초되는—로 해석할 좋은 이유들도 있다.
그러나 심장 열의 의존 관계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데카르트 생리학의 존재론적 토대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적 신체는 단일한 "동력" 원리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살아 있는 신체는 상호의존적 신체 기능들의 총체에 기초하여 작동한다. 이것들은 (적어도) 심장 열, 순환, 소화, 호흡이다. 또한 심장 열은 데카르트 생리학의 인식론적 토대일 수도 없는데, 데카르트가 자신의 인식론적 토대를 존재론적 토대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 생리학의 구조는 존재론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위계적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다. 바로 상호의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 생리학에는 단일한 근저 "생명 원리"의 자리가 없다.
[요약]
1. 서론
데카르트는 ‘생명 원리’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기존 연구는 이 ‘생명 원리’를 심장의 열로 동일시하며 생리학의 근본 토대로 읽어왔다.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데카르트의 일반적 주장과 실제 생리학적 설명을 구별해야 하며, 실제 생리학은 단일 원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 테제다.
2. 생명 원리를 토대로 볼 근거들
저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심장 열이 토대처럼 보이는 이유를 정리한다.
(1) 존재론적 토대(2.1):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영혼이 신체를 추동하는 원리였듯, 데카르트는 영혼 대신 심장 열을 그 자리에 놓는 것처럼 보인다. 시계 유비가 대표적이다.
(2) 인식론적 토대(2.2.-2.3): 데카르트의 지식 나무 비유, 그리고 ‘심장 운동의 진정한 원인을 모르면 의학에 관해 아무것도알 수 없다’는 구절들이 심장 열을 생리학 전체의 인식론적 출발점으로 읽히게 만든다.
3. 심장 열에 대한 설명들
심장 열이 실제로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검토한다.
데카르트는 완성된 저작들 혹은 <인간론>에서는 심장 열을 오로지 불, 발효, 효모, 건초와 같은 유비와 암시로만 설명한다. 이것들은 모호하고 불완전하다.
유일하게 기계론적으로 상술된 설명인 혈액 배출 설명은 미완성 원고인 <인간 신체의 기술>의 배아학 부분에만 등장한다.
4. 상호의존성과 존재론적 토대 반박
심장 열의 의존 관계를 따라가면 단일 원리론이 무너진다.
4.1. 심장 열은 혈액 배출에 의존하고, 혈액 배출은 순환에, 순환은 소화에, 소화는 다시 순환과 심장 열에 의존한다. 호흡도마찬가지로 이 고리에 얽혀 있다. 결국 심장 열, 순환, 소화, 호흡은 모두 상호의존적이며, 어느 하나도 다른 것들보다 더 근본적이지 않다.
4.2. 발생론에서도 심장이 가장 먼저 형성되지만, 심장 형성과 뇌 형성이 서로를 전제하므로 여기서도 상호의존성이 성립한다.
4.3. 데카르트 자신도 때로 ‘신체 부분들의 특정한 배열’이나 ‘주요 부분들 중 하나의 쇠퇴’가 죽음을 야기한다고 써, 단일 원리론과 어긋나는 진술들을 남겼다.
5. 인식론적 토대 반박
존재론적 토대가 없으면 인식론적 토대도 없다는 논리에 더해 별도의 논거를 제시한다.
만약 심장 열이 생리학의 인식론적 토대라면, 데카르트는 그것을 가장 정밀하고 확고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비와 암시로 대충 처리했다.
유일한 기계론적 설명(혈액 배출)은 사후 출판된 미완성 원고의 구석에 묻혀 있고, <정념론> 같은 주요 저작에는 삽입되지않았다.
이는 심장 열이 특별히 중요한 원리가 아니라 여러 생리학적 현상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6. 결론
데카르트의 생리학의 구조는 위계적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다. 심장 열, 순환, 소화, 호흡이 서로를 전제하며 하나의 원환을이루고, 어느 하나도 다른 것들의 토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데카르트 생리학에는 단일한 ‘생명 원리’의 자리가 없다.
'brouill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eborah J. Brown, 「카르테지안 기능 분석」 (2011) 번역 (0) | 2026.04.24 |
|---|---|
| JOHN ELIAS NALE, 데카르트와 혈액의 배치와 정신-신체의 실체적 합일 (0) | 2026.04.23 |
| AT 3, 503-504 레기우스에게 보낸 편지 (0) | 2026.04.23 |
| Jacques-Louis Lantoine, L’agent automate. Le concept de disposition chez Spinoza 일부 번역 및 정리 (0) | 2026.04.23 |
| 성향 SEP 번역 (0) | 202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