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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요약: Hutchins (2016), "데카르트와 생명의 해소"

불난집이름 나보코프 2026. 4. 27. 00:48

 


1. 서론: 문제의 구조

데카르트는 자연 세계에 대해 엄격한 환원주의자다. 물질과 운동만이 존재하며 그 이상은 없다(원리들 1/48). 그런데 "생명"은 이 틀 안에 자리를 갖기 어렵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식물적 영혼이 생물과 무생물을 존재론적으로 구별해 주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존재론에서 영혼은 오직 사유뿐이고, 신체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유의 일종이 아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 따르면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 사이에는 시계와 열쇠 사이의 차이 이상은 없어야 한다"(Regius에게, 1642). 생명은 특별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그런데도 데카르트는 생명을 계속 언급한다. 동물에게서 생명을 부정하지 않고, 잘린 머리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하며, "생명의 원리"를 반복적으로 거론한다. 심지어 Regius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명"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형태를 포함하는 범주로 쓰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핵심 문제: 데카르트는 생명의 일반 개념을 어디에서도 제시하지 않는다. MacKenzie와 Detlefsen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의 순수 물질적·기계적 존재론은 생물을 나머지 물질 세계로부터 분리할 자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Hutchins의 답: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데카르트에게 원리적 생명 개념을 귀속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생명을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한다.


2. 선행 연구들과 그 실패

2.1 생명CH: 심장 열

데카르트는 Mersenne에게 보낸 편지에서 열이 인간·동물·식물을 살게 만든다고 쓰고, More에게는 "생명은 단지 심장 열에 있다"고 말한다. 이에 근거한 가장 단순한 개념:

생명CH = 따뜻한 심장의 소유

문제 ①: 식물은 심장이 없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식물에도 기꺼이 생명을 귀속시킨다.

문제 ②: 심장 열은 생명에 충분하지 않다. 데카르트는 꺼낸 뱀장어 심장에 열을 가하면 다시 뛰지만 그것은 "분명히 죽어 있다"고 말한다. 따뜻하게 뛰는 심장이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생명CH는 기각된다.


2.2 생명H (Hall): 심장 열 + 기능들의 앙상블

Hall은 생명을 "그 운동학적 기원이 열—특히 심장에서 타오르는 빛 없는 불—에 있는 기능들의 앙상블"로 정의한다.

이것은 뱀장어 사례를 해결한다. 꺼낸 심장이 죽어 있는 것은 그것이 기능들의 앙상블을 구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개체에서는 심장 열이 그 기능들을 구동한다.

문제: 이 정의는 심장을 필요로 하므로 식물을 배제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심장의 빛 없는 불"을 "열 일반"으로 약화시켜 생명H2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스토브의 물 끓이기 기능도 포함되어 버린다. 결국 생명 기능들이 무엇인지를 별도로 특정해야 하고, 그 부담은 기능들 자체로 넘어간다.


2.3 생명MK (MacKenzie): 생명 기능들의 목록

MacKenzie는 부담을 기능들 자체로 옮긴다. 운동의 원천이 무엇이든—심장 열이든 다른 것이든—그것은 생명 기능들을 산출할 때만 생명에 관여한다. 생명 기능들이 핵심이다.

생명MK = x는 (운동과 함께) 환경에서 영양을 취하고, 성장하고, 생식하게끔 해주는 부분들의 배열을 가질 때 살아 있다

이 정의는 심장 없이도 식물을 포함할 수 있고, 순수 물질적 조건만 사용한다.

문제 ①: 자의성. MacKenzie 자신이 "데카르트가 어떤 기능들을 목록에 올릴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며, 영양-성장-생식 목록이 "부정확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생명MK에서 일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이 기능들이다. 목록이 공허하면 개념 자체가 공허해진다. "x는 어떤 기능들의 집합을 수행하게끔 해주는 배열을 가질 때 살아 있다"는 어떤 기능하는 기계에도 적용된다.

문제 ②: 텍스트 증거 부재. 데카르트가 생명을 이런 방식으로 보았다는 증거가 없다. 그는 어디에서도 특정 기능들의 집합을 생명의 구성 요소로 규정하지 않는다.


2.4 생명A (Ablondi): 열 + 신적 복잡성

Ablondi는 생명MK를 받아들이되, 그보다 "더 기본적인" 기준으로 복잡성을 제안한다. 근거는 인간론의 구절: 신이 만든 인체는 인간이 상상하거나 귀속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운동과 더 많은 솜씨를 드러낸다.

생명A = (1) 내부 열원 + (2) 오직 신만이 부여할 수 있는 복잡성

Ablondi는 이 복잡성을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로 해석한다. 만약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면 인간 기술이 언젠가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예언적 월권이기 때문이다.

문제 ①: 물질로 정의 불가. 데카르트의 연장된 실체는 "형태, 크기, 위치, 운동"만을 허용한다. 그 안에서 존재론적으로 구분되는 복잡성의 종류는 규정될 수 없다. Ablondi 자신도 이것이 "상당히 해롭다"고 인정한다.

문제 ②: 텍스트 증거 과잉 해석. Hutchins에 따르면 해당 구절들은 신의 위대함에 대한 수사적 호소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More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명시적으로 "나는 사유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생명에 대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Mersenne에게는 인공 새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 문제이지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라고 쓴다.

문제 ③: 식물 부재. 데카르트는 어디에서도 식물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고 시사하지 않는다. Ablondi의 기준에 의해서도 생명A는 실행 가능한 생명 개념이 아니다.


2.5 생명D (Detlefsen): 신의 의도 + 자기보존

Detlefsen은 연장된 실체 자체에는 생명 개념을 지지할 자원이 없음을 인식하고, 비물질적 요소인 신의 의도를 끌어들인다.

그녀는 생명MK를 확장하여 환경에 대한 반응성을 추가하고, 이 모든 기능들을 자기보존이라는 하나의 포괄적 목적으로 통합한다.

생명D = x는 자기보존을 위해 영양·성장·생식·환경 반응성을 수행하게끔 해주는 부분들의 배열을 가질 때 살아 있다

문제 ①: 목적론 도입. 이 정의는 명백히 목적론을 포함한다. Detlefsen은 자기보존 자체는 비목적론적이라고 보지만(Shapiro 2003, Brown 2012에 의거), 생명 기능들을 수행하는 부분들(예: 이첨판이 심장 박동에서 하는 역할)에서 목적인이 도입된다고 인정한다.

문제 ②: 목적론의 유일한 원천은 신의 의도. 물질에는 내재적 목적이 없으므로, 목적론이 가능하려면 외재적 목적—즉 신의 의도—이 필요하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신의 의도를 자연철학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한다. "신의 불가해한 목적들을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한 오만이다"(성찰 AT vii, 55).

문제 ③: 가설적 사용도 허용 안 됨. Detlefsen은 신의 의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아니라 잘 지지된 가설이면 충분하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인정하듯, 데카르트 자연철학에서는 신의 목적에 관한 가설적 주장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결론: Detlefsen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으면서, 데카르트가 생명D를 취하지 않고 불가해성 원칙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의 생물학은 비일관적이 된다. Ablondi가 형이상학을 희생하여 생물학을 보존한다면, Detlefsen은 생물학을 희생하여 형이상학을 보존한다. Hutchins는 어느 쪽도 불필요하다고 본다.


3. 해소론

3.1 생명의 해소

위 다섯 시도의 공통된 실패 원인: 데카르트의 존재론에는 생명 범주가 자리할 곳이 없다.

  • 사유하는 실체: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거부
  • 연장된 실체: 동질적이어서 생물·비생물 구별 불가
  • 신의 의도: 자연철학에서 접근 불가

Hutchins의 답: 데카르트는 원리적 생명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질 필요도 없다. 그는 생명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해 버리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기론이 생명과 연관시켜 온 현상들—영양(혈액 입자의 기관 기공 내 축적), 순환, 호흡, 소화 등—을 하나씩 기계론적으로 설명한다. 각각의 현상은 물질적 상호작용으로 환원된다.

여기서 핵심적 구분: 데카르트적 환원에는 분석적 단계와 종합적 단계가 있다. 영양을 "혈액 입자의 축적"으로 설명할 때, 우리는 혈액 입자의 축적이 있을 때 정확히 영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종합이 성립한다.

그러나 생명의 경우, 심장 열·영양·호흡 등을 모두 가지고 있어도 생물과 비생물을 신뢰할 수 있게 구별하지 못한다. 분석적 단계는 수행되지만 종합적 단계는 수행되지 않는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제거주의다. 생명 현상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생명 자체의 범주는 해소된다.

유비: 제거적 유물론에서 "믿음", "욕구" 같은 통속 심리학 용어들은 환원될 수 없어 제거된다. 신경과학은 그것들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뇌 상태를 직접 다룬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생명 자체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각 생리 현상을 직접 설명한다.


3.2 이의: 데카르트는 생명이라는 말을 쓴다

해소론에 대한 명백한 이의: 데카르트가 생명을 계속 언급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소했다고 볼 수 있는가?

Hutchins의 답변 (세 층위):

첫째, 최소 답변: 강한 환원주의가 형이상학이나 생물학의 일관성 상실을 초래하는 것에 비하면, 엄밀한 정의 없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둘째, 통속적 용어로서의 생명: 엄격한 물리주의자도 편의상 "욕구"를 언급하듯, 데카르트는 편의상 "생명"을 쓸 수 있다.

셋째, 가장 강한 답변: "생명"은 데카르트에게 통속어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용어다. 데카르트가 생명을 언급하는 거의 모든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 생기론에 대한 응답의 맥락이다.

  • 인간론과 방법서설에서: 식물적·감각적 영혼의 잉여성을 보이기 위해
  • 정념론 5·6조에서: 영혼이 신체에 생기를 부여한다는 것이 "매우 심각한 오류"임을 보이기 위해
  • Plempius와의 심장 박동 논쟁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의들에 응답하기 위해

즉 데카르트는 "생명"이 자신의 체계에서 잘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서 잘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용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그의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과 연관시킨 모든 현상이 기계론으로 설명 가능함을 보이는 것이지, 생명 범주 자체를 자신의 체계 안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3.3 이의: 데카르트의 생물학은 생명 개념을 필요로 한다

Detlefsen의 주요 우려: 원리적 생명 개념 없이는 데카르트가 생명 과학의 주제를 규정할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생물학 기획 전체가 비일관적이 된다.

Hutchins의 반박: 데카르트의 관심사는 현대 생명과학의 관심사가 아니다.

  • 데카르트는 일반 생물학의 분과적 통일성을 보호할 특별한 필요가 없었다. 만약 "생명 과학들"이 완전히 물리학으로 무너진다 해도 데카르트에게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
  • 그의 궁극적 목표는 항상 (인간) 의학이었다(AT iv, 329; AT vi, 62–63).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다루는 생물학이 필요 없었다.
  • 따라서 그의 생물학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생명 개념이 아니라 인간 의학의 목적이다.
  • 또한 인간은 영혼과 신체의 합일체이므로, 인간 의학에서는 목적론이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다. 생명 범주 없이도 데카르트의 생물학적 기획은 완전히 일관된다.

4. 결론 및 의의

해소론적 독해의 장점:

  1. 데카르트가 생명의 일반 정의를 끝내 제시하지 않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만약 그 부재가 생물학을 비일관적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중대한 간과일 것이다.)
  2. 자의성이 없다. MacKenzie식 목록 접근과 달리, 특정 기능들을 근거 없이 특권화하지 않는다.
  3.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연장된 실체의 동질성)·신학(신의 불가해성)·인식론 모두와 일관된다.
  4. 생기론 해체라는 데카르트의 실제 작업 방식—아리스토텔레스적 현상들을 하나씩 분해하여 기계론으로 재설명하는 것—과 정확히 부합한다.

보다 넓은 함의: Hutchins는 데카르트가 Machery가 현대 생물학에 대해 훨씬 후에 제안한 것, 즉 "생명을 정의하는 기획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2011, 145)는 것을 이미 인식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